[사유와 성찰]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경향신문]
지난 연말, 세계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세계 로봇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로봇 밀집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로봇 밀집도란 노동자 1만명당 도입한 로봇 대수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줄곧 1~2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로봇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번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전 세계 평균이 126대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932대라고 하니, 거의 일곱 배가 넘는 수치다. 각종 산업시설에서 로봇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간보다는 작업의 정밀도나 작업 속도 면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과 달리 일하다 말고 담배 피우러 나간다든가, 업무시간에 친구와 문자를 하거나, SNS 활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휴가나 병가 신청도 없다. 최근에는 로봇이 작업하는 생산공장의 보안업무마저도 다른 경비견 로봇이 전담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곳에 더 이상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로봇 밀집도 세계 1위에 올라섰으니,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마냥 뿌듯함을 느껴야 할까. 안타깝게도 이 통계 결과는 명암이 뚜렷하다. 즉 산업현장에서 로봇의 도입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만큼 인간 노동자의 해고 위험은 커진다. 육체노동뿐만이 아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자문 회사들은 인간 업무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딥 러닝 기술이 탑재된 투자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켄쇼’를 들 수 있다. ‘켄쇼’라는 이름은 불교 수행자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얻은 첫 깨달음을 뜻하는 ‘견성(見性)’이라는 용어(일본식 발음)를 빌려온 것이다. ‘켄쇼’는 마치 수행승들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듯이, 오로지 투자분석과 예측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인간은 업무수행 능력 면에서 애초에 ‘켄쇼’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월스트리트의 투자금융회사들은 2015년 이후부터 자신들을 금융회사가 아닌 IT회사로 규정하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해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가리지 않고 기존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하지 않았던 고민과 사유를 가져오게 한다. 우리는 어떤 사유와 성찰로 이 변혁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 로봇 시대에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창의성과 고유성을 가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서의 나 말이다. ‘켄쇼’처럼 인공지능의 이름을, 깨달음을 상징하는 단어로 지칭하는 세상이다. 수행이나 깨달음마저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내면 영역까지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는 불길한 암시와도 같다. 이대로라면 어설픈 자기계발 노력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따라잡을 순 없을 것이다. 아니 인공지능과 물리적 노력으로 경쟁하겠다는 접근 자체가 망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한 번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 우리가 줄곧 시선을 고정했던 바깥세상의 변화가 아닌 우리 마음을 응시하는 쪽으로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구적 합리성을 내세워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풍요를 소비하기에 급급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더 차지하기 위해 타인과의 경쟁에만 몰두해왔다. 성공하기 위해 늘 외부 세계의 변화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라고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혼란, 두려움은 더해갈 뿐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당장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기 전에 잠시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모든 것이 ‘복사와 붙여넣기(copy and paste)’가 가능해진 디지털시대에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나’란 누구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불교 승가의 전통 속에서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수행승들만 품는 의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겨울 날씨는 춥고, 거리 두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차분히 앉아서 밖으로만 향하는 내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보는 건 어떨까.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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