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어느 탈북민의 고독사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2022. 1.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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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새해 첫날 아침, 습관처럼 우리나라와 독일의 코로나19 상황을 번갈아 검색했다. 주변 국가들이 초유의 오미크론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 독일 코로나19 분석 자료를 살피다 보면 2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한 가지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지표에서 동쪽과 서쪽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과거 동독이었던 지역은 확진자 수와 백신 접종률, 그 밖의 모든 면에서 과거 서독보다 훨씬 악화한 상황을 꾸준히 보여준다. 동독과 서독, 그 경계가 이미 30년 전에 사라진 것이 무색할 정도로 또렷하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독일에서 ‘사회 통합’이 시대적 과제인 이유 중 하나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우리나라의 사회 통합은 상황이 어떨까.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위협적으로 침투했던 지난 2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사회적 갈등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합의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문제가 시급해 보일수록 뒤로 밀려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문제들은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배제되어 버린다.

지난해 탈북민 사망자 106명 중 49명의 사인은 미상이었다. 어째서 미상인지 찾아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2020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자살 충동을 느낀 탈북민은 전체의 13%에 달했다. 자살률이라면 지독히 악명 높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같은 지표에서 5.2%를 보였다. 탈북민 자살 충동의 이유로는 신체적·정신적 질환(29%), 경제적 어려움(28.5%), 외로움(16.8%)이 꼽혔다. 그들의 소리 없는 죽음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을까. 자료가 보여주는 그들의 부적응, 좌절, 우울은 이미 그들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데도 말이다.

다시 독일 역사로 돌아가 보자. 물론 서독으로 넘어가려는 동독인들을 막기 위해 장벽이 세워지고 비밀경찰이 활동했지만, 과거 구 서독과 구 동독은 지금까지도 분단국인 우리보다 교류가 많았다. 통일 직후에는 400만명에 달하는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자유의 나라, 균등한 일자리 기회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나라. 동독인들은 서독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서독 역시 동독 시민들을 사회·문화적으로 평등하게 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서독의 도시들에서, 많은 동독인은 터키·러시아·우크라이나 이주민들과 같은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으로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 후 소외와 좌절감에 지친 동독인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재이주를 시작했다. 저렴한 집값, 사회주의에만 한정되어 있던 분명한 장점들. 그것은 고향에 가야 할 이유였다. 그때부터 통일 독일의 각종 사회지표도 자연스럽게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된 채 고착화되었다. 겨우 2년 된 코로나19 지표마저 이런 분리의 역사를 다시 보여준다.

두 지역 사이에는 여전히 무너지지 못한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동쪽 도시의 꽤 많은 사람은 통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이 ‘동독’에 있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동독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 역시 그렇다. 난민 유입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몇 해 전, 동독인들은 난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시위에 나섰다. 이렇듯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독과 동독이 통합되는 과정은 진통에 가까웠다.

하물며 한국에 대한 완전한 정보 없이 이곳에 들어온 북한 사람들이 겪고 있을 괴로움은 어떨까.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는 그들의 죽음은 또 어떤가. 2020년까지 북한에서 나와 한국에 온 사람들은 3만3752명에 달한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탈출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사람의 숫자다. 탈북민은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대한민국인’의 지위를 얻게 된다. 같은 말을 쓰고 한국식 통합교육을 받고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마저 자연스레 대한민국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궁지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건 조금 더 따뜻한 관심이다. 2022년 새해, 조금 더 세심히 주변을 살피고, 곁을 내어주고,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탈북민뿐만 아니라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어떤 사람들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러지 않아도 각박한 지금의 세상을 살아내는 것을 극한의 고통으로만 느끼지는 않게 될 것이다. 우리보다 일찍 상황을 겪은 독일의 사례를 살피며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칠 문제들을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한 희망은 있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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