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겸손한 리더, 섬기는 지도자

박신홍 2022. 1. 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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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정치에디터
16년간 스탠퍼드대 총장을 지낸 존 헤네시는 그의 저서 『Leading Matters』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열 가지 덕목을 제시하며 그중 첫째로 겸손함(humility)을 꼽았다. “지도자는 고개를 숙일 때마다 성장한다”는 게 그가 리더들에게 건네는 제1의 조언이었다. 덕목에는 봉사 정신, 공감 능력, 진정성, 협업과 팀워크 등도 포함됐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나 실무 능력보다 감성적 측면을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지나고 보니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는 깨달음으로 읽힌다.

18세기 정치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이끄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일찍이 팔로워십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팔로워 입장에 직접 서봐야 리더가 됐을 때도 독불장군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경구다. 조직의 성공은 리더의 기여도가 20%고 나머지 80%는 팔로워들의 기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팔로워십을 통해 겸손이 바탕이 된 섬기는 리더십을 체득해야 진정 모두에게 인정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이처럼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리더십의 공통된 화두가 카리스마나 추진력 대신 겸손이란 사실은 그만큼 리더가 어려운 자리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잘난 체하는 정치인은 꼰대일 뿐

유권자는 눈높이 맞춘 일꾼 원해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바라는 리더의 자격 중 하나는 유능함이다. 양극화의 심화로 서민들의 고통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고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글로벌 생존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위기 탈출의 선봉장이 될 돌파형 지도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요즘이다. 후보가 누구든 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쪽에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포켓 밸류 보팅(pocket value voting)’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대선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유능함이 선을 넘으면 자칫 교만과 독단의 덫에 빠지기 쉽다. 추진력과 결단력은 유능함의 필요조건일 뿐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내가 최고”라는 자만에 빠지는 순간 리더와 팔로워의 간극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은 특히 20세기 군대 문화인 상명하복과 강한 위계질서에 익숙한 기성세대에서 곧잘 발견된다.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5060 리더들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불리는 2030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게 ‘잘난 체하는 정치인’임을 이들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꼰대’라는 걸 이들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유권자들이 원하는 리더는 위에 군림하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더 나아가 일꾼처럼 기꺼이 섬길 자세가 돼 있는 지도자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고 유권자의 수준도 한껏 높아졌다. 전 세계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민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 아니던가. 3월 9일 투표장에 자신의 상관을 찍으러 간다고 생각할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겸손이 부재한 카리스마는 독재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무능보다 더 위험하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다는 게 불행할 따름이다.

유권자들 마음의 문을 열려면 그 문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대선이 두 달 남은 지금 그 열쇠는 유능함도, 자신감도 아닌 겸손함이다. 겸손이 신뢰를 부르기 때문이다. 배의 항로를 결정하는 건 바람과 파도가 아니라 돛의 방향이다. 지금 대선후보들이 챙겨야 할 것도 급변하는 판세와 요동치는 파도 이전에 겸손의 돛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래야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60일 뒤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대중은 이슈 자체가 아니라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 마음 줄 대상을 정한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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