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34] 체념 증후군에 대하여

백영옥 소설가 2022. 1.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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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에서 5개월 동안 무반응 상태로 누워 있는 일곱 살 여자아이를 봤다. 배 위에 차가운 얼음을 올려놓아도 아이의 혈압과 맥박에는 변화가 없다. 스웨덴에 사는 난민 아이 ‘다샤’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짓눌리던 어느 날, 먹고 말하고 걷는 것을 차례로 내려놓았다. ‘체념 증후군’이라 부르는 이 질환은 스웨덴에서 지난 3년간 200건 넘게 보고됐다. 이 병에 걸린 아이 중 일부는 3년 넘게 혼수상태로 있다.

아이 때는 지나칠 정도로 호기심이 넘친다. 하지만 불안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체념만큼 아이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을까. 그러나 아이들의 체념이 한순간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가령 수학이 너무 힘들어 포기한다. 그러다가 시험을 포기하고, 학교 진학을 포기하다가 결국 인생을 포기하는 이른바 ‘이번 생은 망했다’의 정서에 젖어든다. 그렇게 일부는 인류 멸망이나 신대륙 이전을 꿈꾸는 게임에 빠지거나, 자신의 문제를 부모, 학교, 선생, 세상 탓으로 돌리며 대화를 거부한다. 나는 아이들이 느끼는 체념의 끝에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극단에는 ‘체념 증후군’이 있었다.

경험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아이들 생각은 단순하다. 성공과 실패, 인기와 왕따. 행복 아니면 불행인 경우가 많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행복과 불행 사이의 ‘다행’의 행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이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다샤’가 음식을 삼킬 수 있게 된 건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진 부모의 희망이 아이 몸에 스미면서부터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듣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끝없이 아이 귀에 속삭인다. 우린 널 포기하지 않아,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 아무도 널 다치게 할 수 없어, 라고. ‘다샤’에게 ‘체념’에서 ‘희망’으로 가는 그 길은 본국 탈출보다 더 긴 여정이었을지 모른다. 다샤는 1년여 만에 눈을 뜬다.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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