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시 숲의 놀라운 기운과 매력에 빠지다

2022. 1. 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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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오름학교는 <안세미오름,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삿갓오름, 둔지오름, 대왕산, 성읍 녹차밭과 동굴, 머체왓숲길, 서귀포 치유의 숲> ]

[프레시안 알림]
이승태 교장선생님(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은 얘기합니다.

상황이 좋아지나 싶더니 다시 코로나가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군요. 모두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제주의 푸른 자연이 더욱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방역이 잘 이뤄져서 새해엔 좀 더 나은 환경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겨울엔 제주 동부와 서귀포의 숲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간 몇 번을 가고자 했으나 길이 막혔던 오름들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기운과 매력을 가진 삿갓오름, 둔지오름과 대왕산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제주 원시 숲의 놀라운 기운과 매력에 빠지다.Ⓒ이승태

오름학교(교장 이승태)의 2022년 2월 18(금)-19(토)일, 제17강은 <제주 원시 숲의 놀라운 기운과 매력-안세미오름,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삿갓오름, 둔지오름, 대왕산, 성읍 녹차밭과 동굴, 머체왓숲길, 서귀포 치유의 숲>을 찾아갑니다.

2017년 11월 개교한 오름학교는 제1강 <애월의 오름>, 제2강 <안덕의 오름>, 제3강 <표선의 오름1>, 제4강 <제주서부 중산간오름>, 제5강 <곶자왈 특집>, 제6강 <초지능선오름>특집, 제7강 <오름, 가을풍광 속으로>, 제8강 <제주 서부오름 소병악과 대병악, 비양도의 비양봉과 제주의 특별한 건축물 기행>, 제9강 <봄빛 가득, 제주 서남부 오름들>, 제10강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오름들>, 제11강 <그 깊고도 짙은 푸름 속으로! 한여름의 서부 제주 보석 같은 오름들>, 제12강 <제주의 바람, 초원을 흔드는 바람-제주의 가을바람과 가을하늘이 잘 어울리는 오름>, 제13강 <늦가을 서정으로 가득! 제주올레의 아름다운 오름들>, 제14강 <아! 한라산 깊은 산중의 아름다운 여름풍경>, 제15강 <탐라추경(耽羅秋景) 특집 : 윗세오름(영실-윗세오름대피소-어리목), 하논분화구, 여절악, 통오름, 독자봉>, 제16강 <제주 오름의 가을! 세미오름, 부소오름, 부대오름, 골체오름, 민오름, 대수산봉, 낭끼오름, 유건에오름>에 이어 제17강 <제주 원시 숲의 놀라운 기운과 매력-안세미오름,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삿갓오름, 둔지오름, 대왕산, 성읍 녹차밭과 동굴, 머체왓숲길,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향합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22년 2월 강의를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17강 1일차/2월 18일(금요일)

기대어 살기 좋은 곳
-안세미오름
오름 자체의 높이가 91m로 제법 봉긋한 산체를 보여주는 안세미오름은 북쪽으로 열린 말굽모양 화구를 가졌습니다. 벌어진 화구 사이의 바위틈에서는 맑은 샘이 솟아납니다. 그 생김새가 쌀을 이는 데 쓰던 조리를 닮아서 ‘조리세미물’이라고 부르며, 달리 ‘명도암물’이라고도 합니다.

▲안세미오름과 밧세미오름. 안세미오름 분화구 안에 유허비가 보인다.Ⓒ이승태

탄탄하게 쌓은 원형의 벽에 콘크리트 지붕을 덮어 동굴처럼 보이는 보호시설이 샘을 감싸고 있습니다. 제주인들이 먹는 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그 슬기와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아래로 채소와 쌀 같은 식재료를 씻는 구역이 있고 빨래터와 가축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샘은 네 구역의 물웅덩이로 이뤄진 것이죠. 아래로 내려갈수록 웅덩이 크기가 넓어집니다. 맨 아래 웅덩이 주변엔 벤치를 설치하고 전망데크도 만들어 공원처럼 꾸몄습니다. 이 전체 모양이 특이하고 예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안세미라는 이름은 이 조리세미에서 유래합니다. 안세미의 서남쪽에 나지막한 고갯길을 끼고 또 하나의 오름이 이어집니다. 명도암마을에서 볼 때 바깥에 있어서 밧세미오름이라고 부릅니다. 밧세미 또한 북쪽이 트인 말굽형 화구를 가졌고, 안세미처럼 남쪽에서 볼 적엔 둥그스름합니다. 두 오름이 이렇게 닮은꼴이라서 합해서 ‘형제봉’이라고도 합니다.

달래가 지천인 안세미
안세미에 쾌적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는 것에 반해 밧세미는 길이 없고 정상에서의 조망도 막혀서 찾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안세미오름 들머리에 ‘봉개동 명도암 선생 유허비’가 있습니다. 제주도 향토유형유산 제18호인 이 비는 조선 중기의 제주 출신 문인인 김진용(金晉鎔)의 교육 진흥에 대한 공덕을 기리려는 목적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제주에서 귀양살이 중이던 이익(李瀷)에게 수학해 과거에 급제했고, 성균관에서 유학 후 숙녕전참봉이라는 벼슬에 제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양하고 제주로 내려와 처가가 있던 이곳 명도암(明道岩)마을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제주 교육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장수당(藏修堂)을 세워 제주 삼읍의 자제를 교육하는 장소로 삼는 등 제주도 유학 진흥에 힘쓴 인물입니다. 후대인들은 그를 이곳 이름을 빌어 ‘명도암(明道菴)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안세미오름은 좌우 능선 어디로 올라도 좋지만 왼쪽 능선으로 올랐다가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좋습니다. 길은 폐타이어로 짠 매트와 나무계단으로 이뤄졌으며, 한 사람이 사색에 잠기며 걷기에 딱 좋은 넓이와 정취를 가졌습니다. 1.2km 길이의 탐방로는 가파르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안세미오름은 제주를 대표하는 달래 자생지입니다. 탐방로 주변으로도 달래가 수두룩하게 자랍니다. 저절로 향 좋은 달래된장찌개가 떠오르지만 채취는 금지입니다.

벤치와 산불감시초소, 팔각정자가 있는 정상에 서니 개오리오름과 절물·거친·민오름, 큰지그리·족은지그리·바농오름 같은 한라산 자락에 기댄 내로라하는 오름이 눈앞에 가득 펼쳐집니다. 이 풍광에 취해 한없이 머물고픈 곳입니다. 오름 사이 들판에 들어선 몇몇 골프장도 여기서 보니 멋지군요.

▲덤불이 숲을 이룬 정상부 능선길. 다른 계절이 공존하는 듯하다.Ⓒ이승태

정상을 지나서도 덤불이 벽처럼 자란 수풀 사이로 구불구불 오솔길이 정답게 이어집니다. 능선이 굽어 도는 곳에서 길이 갈리는데, 왼쪽이 밧세미로 이어집니다. 오른쪽 길은 곧 정자 하나를 더 만나며 삼나무숲으로 파고들더니 아래로 내려섭니다. 나무계단이 깔린 길은 여전히 정겨운 풍광입니다. 습한 숲 바닥엔 관중 같은 양치식물과 이끼가 가득합니다. 곧 오른쪽으로 명도암물이 보이며 탐방은 끝이 납니다.

삿갓 닮은 제주 김녕의 북망산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삿갓오름[입산봉]
오름과 뱅듸를 걷다 보면 많은 무덤[산담]을 만나게 되죠. 거친 돌과 울창한 수풀로 뒤덮인 사나운 땅 뱅듸를 개간하며 나온 돌로 밭담을 쌓고, 집을 지어 살던 제주 사람들이 죽어서 그 오름과 뱅듸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름을 다니다 보면 대부분의 양지바른 사면에서 마을 공동묘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고요. 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고, 망자의 고향입니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삿갓오름은 이 점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하늘에서 본 삿갓오름 무덤군. 높고 넓은 동쪽사면에 무덤이 가장 많다.Ⓒ이승태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오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라고 해야 할 정도로 오름 사면을 따라 무덤이 빈틈없이 들어찼습니다. 우도의 우도봉을 이루는 세 봉우리 중 한 곳에도 무덤이 빼곡하지만 삿갓오름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죠. 하도 밀도가 높다 보니 산담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덤도 수두룩합니다. 봉분만 서로 다닥다닥 붙은 꼴. 도무지 무덤을 피해서는 오름을 오를 수 없을 지경이니, 보고도 놀랄 따름입니다.

해발 85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인 삿갓오름은 안에 둥근 굼부리가 패어 있고, 산의 전체 모양이 삿갓을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한자로는 입산(笠山)이라고 씁니다. 달리 입산봉(笠山峰)이라고도 부르죠. 조선시대에 이 오름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에요. 삿갓오름에서 봉수대가 있던 봉우리를 ‘망동산’이라 불렀습니다.

삿갓오름의 정상부 굼부리는 2만 평쯤입니다. 오름 높이에 비해 무척 큰 편이죠. 신비로운 것은 분화구 가운데에 100평 정도 넓이의 연못이 있다는 것. 수십 년 전에는 이 연못을 이용해 논농사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비닐하우스와 채소밭이 들어앉았습니다. 화구벽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밭뙈기가 한가운데 연못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어서 잘 가꾼 정원처럼 보입니다.

이 밭의 한 곳에서 선사시대의 돌괭이 두 개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선사시대 농기구인 돌로 만든 괭이가 출토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하네요. 수천 년 전 이곳에 선사인이 살았다고 하니 제주에서도 특별한 오름임에 틀림없습니다.

삿갓오름 굼부리 안의 경작지, 북사면과 동사면 일부의 솔숲을 제외한 전체가 무덤으로 덮였습니다. 옛 봉수대조차 흔적이 없죠. 지금은 더 묻을 공간조차 안 보입니다. 옛날엔 무덤 하나의 면적이 네 평을 넘을 수 없다는 읍장의 경고문이 붙었을 정도라고 하니 어지간히 명당이거나 정말 묻을 공간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늘에서 본 삿갓오름의 남쪽. 멀리 김녕해수욕장이 보인다.Ⓒ이승태

돗제를 지내던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탐방은 서쪽의 김녕농협 농산물저온저장고 앞에서 시작합니다. 저장고 앞, 삿갓오름과의 사이는 밭인데, 밭 가운데 기괴하게 가지를 뻗은 팽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궤네깃당’의 당산목입니다. 조선시대까지 제를 지내던 궤네깃당은 살아 있는 돼지를 이곳으로 끌고 와서 삶아 제물로 차리는 돗제가 이뤄지던 곳입니다. 그 후 4·3사건을 겪으면서 당에 다니지 못하게 되자 각 가정에서 돗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궤네깃당 바로 아래엔 ‘궤네기굴’이라는 제법 커다란 동굴이 있습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이 용암동굴은 전체 길이가 200미터쯤입니다. 중세시대 이후 지역 사람들은 궤네깃당에서 액을 물리치고 풍년과 무병장수를 빌며 제를 지내왔답니다.

궤네깃당을 마주보는 곳에 입산봉 들머리가 있습니다. 빼곡한 무덤 사이로 난 길은 분화구 안의 금산농장으로 이어지죠. 농장 대문에서 양쪽 화구벽을 따라 오르면 됩니다. 길은 선명하다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빼곡한 무덤 사이에서 사라집니다. 딱히 구분된 탐방로가 있는 게 아니어서 능선을 따른다는 마음으로 길을 찾으면 됩니다.

들머리 반대편, 그러니까 동쪽이 정상입니다. 산담이 두텁고 무덤 앞에 방풍림처럼 나무를 심어둔 제법 번듯하고 커다란 무덤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니 이 무덤을 중심으로 다른 무덤들이 자리를 정한 듯 방사형으로 펼쳐졌더군요. 다른 무덤보다 크기도 커서 단연 돋보입니다. 북쪽으로는 에메랄드빛 바다빛깔이 눈부신 김녕해수욕장이 훤하고요.

제주에서는 최근 장례풍습이 바뀌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무덤을 이장해서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아 모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드론으로 살펴보니 삿갓오름에도 이장하며 파헤쳐 놓은 무덤이 수두룩하더군요.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살아 있는 돼지를 잡아 돗제를 지내던 곳이다.Ⓒ이승태

망자의 산에서 삶을 생각하다
그간 제주의 숱한 오름을 올랐었지만 삿갓오름처럼 독특한 곳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오름에서 많은 무덤을 만났으나 산발적이었고, 공동묘지였어도 잠깐 스쳐 지났을 뿐이죠. 삿갓오름은 오르내리는 내내 무덤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상에서 쉴 때도 무덤을 두른 산담이 아니면 엉덩이 붙일 공간조차 안 보이고요.

땅속에 누운 망자끼리 서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붙은 무덤들이 살가워 보입니다. 살아서도 서로 저리 다정했을까요? 여러 관계로 얽히고 설키며 아귀다툼하듯 산 이도 있을 테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게 남으로 살았던 이도 많을 겁니다. 주인으로 또는 평생을 종으로 산 이,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노인…. 아웅다웅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질기게 살았겠으나 지금은 모두 한 평씩 차지하고 누워 사이좋고 평온해 보입니다.
삿갓오름을 내려서기 전에 자꾸만 제 삶을 되짚어보게 되더군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서는 안 될, 차가운 심장으로 살지는 않았나 싶어서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상상 이상의 놀라운 풍광
-둔지오름
송당리에서 비자림로를 따라 평대리로 가다가 돝오름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오름입니다. 한동리와 행원리, 월정리의 너른 들녘을 배경으로 피라미드처럼 솟은 둔지오름은 주변에 이렇다 할 오름이 없어서 더 도드라집니다. 분화구 안쪽 사면은 제주 오름 중에서 견줄 곳이 없을 정도로 가팔라서 거의 흘러내린 수준입니다.

▲돝오름에서 본 둔지오름. 주변에 다른 오름이 없어서 도드라진다.Ⓒ이승태

분화구 앞의 수많은 구릉
‘왕따’를 당한 듯 뚝 떨어져 홀로 솟은 둔지오름은 무척 이색적인 곳입니다. 먼저 오름을 포위하듯 두른 사방의 무덤이 눈길을 끌죠. 특히 동쪽과 남쪽은 온통 산담으로 빼곡합니다. 이는 둔지오름 자락이 예로부터 묘를 쓰기에 명당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으로, 멀리서도 이곳에 고인을 묻고자 애를 썼다고 합니다. 원뿔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은 둔지오름은 남서쪽으로 열린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분화구가 터져나간 방면으로 수많은 구릉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죠. 이는 분출한 용암이 무너진 산체와 뒤섞이며 흘러가다가 퇴적한 것이라고 하네요. 즉, 둔지오름의 분신 같은 것들입니다. 오름 이름도 이 풍광으로 인해 붙은 것입니다. ‘평지보다 좀 더 높은 곳’을 일컫는 제주어가 ‘둔지’로, 알오름보다 작은 이 구릉들을 품었기 때문이죠.

탐방로는 북동쪽 사면과 서쪽 능선을 따라 나 있습니다. 한동리공동묘지 안쪽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직선에 가까운 길은 코가 땅에 닿을 듯 비탈의 연속입니다. 오름 자체가 152m로 높은 축에 들고, 산체도 가팔라서죠.

▲눈 덮인 송당리 들녘Ⓒ이승태

내려설 때는 서쪽 능선
가까이에 이렇다 할 명소가 없고, 이처럼 가파르기까지 하니 둔지오름은 여느 오름에 비해 찾는 이가 드뭅니다. 대신에 오르기만 하면 놀라운 풍광을 만날 수 있죠. 북동쪽 평대해변과 월정리해수욕장 쪽으로 거침없이 뻗어간 들판이 가슴을 뻥 뚫어주고, 남서쪽으로 다랑쉬와 손지오름, 돝오름, 백약이, 높은오름, 민오름, 거슨세미, 안돌‧밧돌을 지나 체오름에 이르기까지, 우뚝우뚝 솟은 동부의 오름들이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숨차게 오른 고생에 비해 차고 넘치는 보상이에요. 산불감시초소 옆 평상에 앉아 이 풍광에 빠져드는 시간이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서지 말고 오름 서쪽 능선을 따르는 게 좋습니다. 소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지는 이 길이 좀 더 순하고, 풍광도 다채롭습니다. 또 산담으로 뒤덮인 구릉들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뵤. 능선을 내려선 후 오른쪽의 무덤 사이를 지나면 콘크리트포장도가 오름 북쪽의 덕평로까지 이어집니다.

초원을 뛰어노는 말을 감시하던 곳
-대왕산
중산간동로 옆에 펑퍼짐한 모양으로 서 있는 대왕산은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삼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였습니다. 거창한 오름 이름은 옛날 한 지관이 왕(王)자 모양을 한 수산리 일대 형국이 오름 자락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왕뫼(왕메, 왕미)’라고 부른데서 유래합니다. 입구의 안내판엔 고려 말, 몽고의 다루가치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고 수산지역에서 말을 키웠는데, 일대에서 비교적 높은 이 오름에 올라서 말을 감시했다고 해서 대왕산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숲 아래로 널린 자금우Ⓒ이승태

서북쪽으로 기운 분화구 가져
큰 도로에서 떨어진 마을 안쪽에 있으며, 오름의 남녘에 여느 오름처럼 마을공동묘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쪽 수산리에서 탐방로가 이어지죠. 입구의 산담을 지나 숲 사이로 난 탐방로는 곧 커다란 지그재그 모양으로 구불거리며 능선으로 향합니다. 밖에서 볼 때는 삼나무로 뒤덮인 것 같지만 숲 속에서 보면 활엽수가 더 많습니다. 숲 아래론 여러 종류의 천남성과 자금우 같은 제주를 대표하는 식물로 가득하고요.

들머리에서 화구벽 능선까지는 440m로 20분 남짓 걸립니다. 정상인 산불감시초소에서 서북쪽으로 기운 분화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탐방로가 조성되었습니다. 능선길은 대체로 울창한 숲에 덮였고, 간간히 열린 숲 사이로 성산과 표선 일대의 지평선 같은 풍광이 슬쩍슬쩍 보입니다. 오름이 크거나 높지 않으며, 겨울에도 푸른 숲으로 덮인 제주의 자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완만한 정상부 능선Ⓒ이승태

성읍 녹차밭과 동굴
-제주 토박이도 모르는 감추인 비경
화산섬 제주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습니다. ‘만장굴’과 ‘김녕굴’ ‘협재굴’ ‘당처물동굴’ ‘벵듸굴’ ‘용천동굴’ 같이 널리 알려진 용암동굴 외에도 이름조차 없는 동굴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땅밑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굴도 많다고 하죠. 중산간 지대를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동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짧고 작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것은 수백 미터에 이르기도 합니다. 김녕의 ‘빌레왓길’에서 만나는 ‘남문동굴’과 ‘궤네기굴’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동굴들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며, 남문동굴은 동네의 하수구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죠.
▲하늘에서 본 성읍 녹차밭과 동굴Ⓒ이승태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오늘은’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겸한 쇼핑센터가 있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 같은 것을 팔던 곳이었는데요, 이 건물 서쪽으로 구릉을 따라 드넓은 녹차밭(오늘은 녹차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설록 녹차밭이 있는 서광다원의 거대한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적하면서도 무척 예쁜 곳입니다.

‘성읍 녹차밭 동굴’은 이 녹차밭의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정상부에 있습니다. 가지런히 정리된 차나무 사이로 넓은 길이 이어집니다. 그 길 왼쪽 멀리에 몇 그루의 키 큰 나무가 보이는 곳에 바로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로 가는 길에 한라산과 큰사슴이오름, 따라비오름이 눈길을 끌고, 녹차밭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동북쪽으로 영주산과 모구악, 독자봉이 도드라집니다.

이름 없는 이 동굴은 원래 넓은 지하공간이었는데, 한쪽 끝의 천장이 무너지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무너진 면적이 꽤 넓습니다. 3층짜리 건물쯤은 지붕도 안 보일 만큼 내려앉았고, 테니스 코트 하나는 들어서고도 남을 면적입니다.

무너지지 않고 남은 동굴(북서쪽) 바닥에 여러 개의 장독이 보입니다. 다원에서 사용하던 것일 테죠. 동굴 안으로 들어설수록 좁아져서 끝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지 않은 동굴임엔 틀림없습니다.

▲성읍 녹차밭 동굴 안에서 본 입구 풍광Ⓒ이승태

제17강 2일차/2월 19일(토요일)

제주 숲이 주는 위로
-머체왓숲길
제주도 방언인 ‘머체’는 돌이 많거나 무더기로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머체왓’은 이 일대가 머체로 이뤄진 밭(왓)이 많아 붙은 이름입니다. 숲 북쪽에 머체오름이 있고, 옛날 이 부근에 ‘머체골[馬體洞]’이라는 작은 마을도 있었답니다. 머체오름은 머체로 이뤄진 오름 또는 지형이 말 모양이어서 그리 부른다는 설이 전해옵니다.

▲들머리에서 본 한라산. 가운데 목초지를 휘감으며 머체왓숲길이 지난다.Ⓒ이승태

머체왓숲길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서중천을 끼고 펼쳐지는 숲길로, 머체오름과 서성로 사이의 광활한 수풀지대를 지납니다. 516도로와 녹산로를 잇는 서성로 옆에 ‘한남리 머체왓숲길 방문객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안내센터는 식당을 겸하고 있으며, 탐방안내도와 주차장, 화장실 등을 갖추었죠. 이곳을 들·날머리로 삼아 탐방이 이뤄집니다.

머체왓숲길은 세 개의 탐방로로 구성됩니다. 안내센터에서 출발해 느쟁이왓다리, 방애혹, 제방낭기원쉼터, 머체왓전망대와 머체왓옛집터를 지나 서중천숲터널을 따라 돌아오는 ‘머체왓숲길’과 서중천을 중심으로 방사탑쉼터, 머체왓편백낭쉼터, 중잣성, 오글레기도궤, 연제비도를 두루 거치는 ‘머체왓소롱콧길’, 안내센터에서 남쪽으로 서중천을 따라 내려서는 ‘서중천탐방로’가 그것입니다. 이 중 6.8km의 머체왓숲길을 가장 많이 찾습니다.

▲숲길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목장의 초지대. 한겨울에도 파릇파릇하다.Ⓒ이승태

제주 중산간의 울창한 원시림 속을 헤집고 지나는 이 길은 제주 숲의 온갖 좋은 기운으로 샤워를 하는 듯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포장된 길을 따라 걷는 사려니숲길과는 또 다른 날것 그대로의 제주 숲을 만나게 됩니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며, 울창한 활엽수 사이로 이어지는 구간이 많습니다. 드넓은 목장의 초지대와 상록수림지대,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대가 뒤섞이며 다양하고 흥미로운 풍광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제주에서 세 번째로 긴 물길인 서중천을 끼고 지나기에 그야말로 제주 자연의 매력에 저절로 빠져들게 됩니다. 사철 푸른 제주의 숲과 한겨울에도 초록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목초지를 따라 놀멍 쉬멍 걷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머체왓숲길에서는 삼나무나 편백나무 숲도 만난다. 산림욕으로 최고의 구간Ⓒ이승태

서귀포 치유의 숲
-제주를 대표하는 숲 종합병원
회색 콘크리트 더미에 갇혀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신록의 샤워를 즐길 수 있는 숲이란 자체로 힐링이고 그 숲으로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로망일 겁니다. 제주도내 최초 치유의 숲으로 조성된 ‘서귀포 치유의 숲’은 ‘숲을 찾는 사람 모두가 산림치유의 대상’이라는 모토 아래 2016년에 개장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제주를 찾은 외국인에게도 제주도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고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서귀포시 호근동의 산록남로 중간 해발 320~760m의 17ha(헥타르) 공간에 들어선 서귀포 치유의 숲은 난대림과 온대림, 한대림의 다양한 식생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특히 평균수령 60년을 넘는 전국 최고의 편백숲이 수두룩해서 최근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인근 치유 마을인 호근동과 연계해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차롱치유 밥상’도 맛볼 수 있으며, 마을 힐링해설사와 산림치유지도사가 동행하며 제주의 원시 숲에 대한 해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치유의 숲 끝에는 시오름(758m)도 있어서 연계해 다녀오면 온전한 숲에서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1시간쯤의 숲해설 코스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제주의 원시 숲이 간직한 놀라운 자연의 비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름학교 제17강 탐방 개념도Ⓒ오름학교

오름학교 제17강은 2022년 2월 18(금)-19(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네이버 카페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오름학교(2월) 기사를 확인하십시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자는 자신과 동행자를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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