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죽 롱 코트
[경향신문]
북한에는 ‘김정은표 가죽 롱 코트’가 있다. 더블 버튼과 벨트,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코트다. 1980~1990년대 홍콩 갱 영화 주인공이 입던 코트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12월 리모델링한 삼지연군 읍지구 준공식 때 입고 나오면서 알려졌다. 벨트를 꽉 조인 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김 위원장의 현장지도 사진 등이 노출되면서, 가죽 코트는 김 위원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옷차림과 제스처를 흉내내는 등 후광효과를 노리던 김 위원장이 권력기반을 굳힌 뒤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메시지를 ‘의상’을 통해 표출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김 위원장이 최측근에게만 이 코트를 선물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죽 코트는 권력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대회 기념 심야 열병식 때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조용원 당 비서,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세 사람만 가죽 코트를 입고 등장해 ‘실세 인증’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가죽 코트를 입지 못한 공식 서열 2위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실권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가죽 코트가 권력의 상징이 되자, 북한 젊은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은표 코트가 유행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해 11월 전했다. 개인 의류사업자들이 합성 가죽 원단을 수입해 코트를 만들고 이를 장마당에서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법당국이 “최고존엄 권위에 올라타려는 불순한 동향”이라며 가죽 코트를 착용한 주민들을 단속했고, 주민들은 “코트에 무슨 불순한 사상이 들어있느냐”고 반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김덕훈 북한 내각총리가 가죽 코트 차림으로 경제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7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김 총리는 가죽 코트를 입고 농업·경공업 현장을 시찰했다. 김 총리는 새해 황해제철연합기업소를 방문했을 때 같은 옷을 입었다. 자력갱생을 강조한 김 위원장이 관련 정책을 이끄는 김 총리에게 힘을 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선물을 드러내 권력을 과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다.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1인 독재 체제의 후진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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