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댓글달던 페친, 결혼식 느닷없이 등장..대다수 반응은 이랬다 [Books]

김유태 2022. 1.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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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 로빈 던바 지음 /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펴냄 / 2만2000원
우정이라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은 `시간`이라는 대지에 `대화`라는 벽돌을 오랜 기간 쌓아 올림으로써 그 크기가 결정된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짓궂은 실험 하나. 페이스북(메타) 친구가 꽤 많았던 스웨덴의 한 방송인이 정말로 해본 실험이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지인들은 결혼식을 앞두고도 그를 식장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첩장 한 장 없이. 그는 '페북 지인'의 성대한 결혼식을 축하해주고자 떠났다.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으로 매일 수차례 소식을 주고받는 '깊은' 관계이므로.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성대한 출발을 축복하고자 말이다.

보지 않아도 훤하듯 반응은 둘로 갈렸다. 일부는 반갑게 환대하며 그를 맞았지만 대다수는 불청객의 등장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심지어 문전 박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실험은 듣기만 해도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철석같이 믿던 인간관계라는 그물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수백만 명의 폴로어와 구독자를 가진 사람들이 흔해지고, 페이스북 친구 '5000명'이 사회적 명망가의 척도가 된 시대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는 책이 출간됐다.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교수의 신간 '프렌즈'는 사람들의 '진짜 우정'에 대한 진솔한 지침서로 기능할 만하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우정을 깊이 있게 일러준다.

던바 교수는 이미 '던바의 수(數)'로 유명한 세계적인 학자다. 던바의 수부터 복습해 보자. 이 기막힌 가설의 요체는 이렇다. '종(種)의 뇌 크기가 사회적 관계의 수를 결정한다.' 영장류인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뇌는 150명 남짓이며 이를 쉽게 말하면 영장류인 한 사람이 유지 가능한 친구의 숫자가 150명이란 뜻이 된다.

이제 묻게 된다. 도대체 우정은 어떻게 정의될까. 왜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또 바람직한 우정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독과 우정을 함께 사유해 보자. 늘 그렇듯 삶은 고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대개 우정은 고독에 앞선다. 왜냐하면 일생을 혼자 사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자로부터 오는 안정에 기대는 나약한 동물이다. 때로 타자는 모든 '나'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키는 대적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을 다시 살아볼 힘을 건넨다. 인간은 그래서 고독과 우정을 길항적으로 경험하며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던바 교수는 이를 두고 "우정과 고독은 사회적 동전(social coin)의 양면"이라고 적는다.

따뜻한 관계와 신체적·정신적 접촉은 인간 체내의 엔도르핀 생성을 돕고 뇌는 이 엔도르핀을 흡수한다. 그것이 온기를 가진 우정이란 개념의 정확한 얼굴이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할 때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온기는 인간이 가끔 느끼기 마련인 심리적 고통을 지연시켜주고 결국 도달하고야 말 정신적 통증을 완화시켜준다.

통증의 지연과 완화를 넘어 때로 우정은 삶 자체를 유지하는 기둥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한 교수가 사망 위험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분석했더니 생존 확률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교활동' 수치였다.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역 공동체에 안정적으로 소속돼 있다고 평가한 사람은 생존 확률이 높았다. 반면 네트워크로부터 이탈돼 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괏값이 나왔다. 호주 남성 수천 명을 연구했더니 친구가 없고 사회적 관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남성은 불안감이 컸다. 그렇다면 우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같은 언어와 같은 취미, 같은 정치적 색채와 세계관만으로 충분할까.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쓴다. 우정을 결정짓는 변수는 시간이다. 우정은 시간에 이끌린다. 한 사람과 가벼운 친구가 되려면 총합 45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가까운 친구를 만드는 일은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간은 한정된 재화이며 한 친구에게 내주는 시간은 다른 친구에게는 내줄 수 없는 시간이다. 시간을 내주는 일은 목숨을 내주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모든 관계는 부정당해야 할 관계일까. 던바 교수는 과거였다면 식어버렸을 우정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우정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소셜미디어는 집단 상호작용이 아니라는 점, 갈등이 생기면 타협하는 대신 접속을 끊어 관계를 끝내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결국 우정이라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은 시간이라는 대지에 대화라는 벽돌을 오랜 기간 쌓아 올림으로써 그 크기가 결정된다. 우리가 일생에서 쌓아 올릴 수 있는 그 무형의 건축물 숫자는 던바의 수에 따르면 150채 남짓이다. 이제 어떤 건물을 쌓아 올릴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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