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이재명의 '안면몰수' 화법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신문방송학과 2022. 1. 7. 17: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은 자신이 토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에게 자꾸 토론을 하자고 요구하진 않았을 게다.

차라리 "토론을 하면 내가 불리하니 3회의 법정 필수 토론만 하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이 토론을 잘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신문방송학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은 자신이 토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에게 자꾸 토론을 하자고 요구하진 않았을 게다. 윤석열이 토론을 거부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은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토론을 하면 내가 불리하니 3회의 법정 필수 토론만 하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민주당은 토론을 거부하면 대통령 자격이나 자질이 없다는 듯 공세를 펴지만, 그건 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모독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치열했던 2017년 2월로 돌아가보라. 당시 이재명은 문재인을 향해 제발 토론 좀 하자고 외쳤지만, 문재인은 토론을 한사코 피해 다녔다. 예정되었던 민주당 지방의원협의회 초청 대선후보 토론회마저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무산시키기도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이 토론을 피해 다닌 이유는 3월6일 토론회에서 입증되었다. 이재명은 동문서답하는 문재인을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세웠다. "A를 물으면 A를 답해야지요. 왜 B를 말합니까." "자기가 발표한 정책 내용이 뭔지는 아셔야 합니다." 문재인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재명은 이 장면을 포함해 문재인에게 함부로 대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문재인을 사랑하는 친문 지지자들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당당히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쟁취했고 민주당을 '재명학'의 학숙으로 만들면서 사실상 대통령 이상 가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스스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니, 이재명으로선 자신감이 흘러넘칠 게다. 그러나 자신이 토론을 잘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이 되면 그런 착각은 토론을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재명의 강점은 토론이 아니라 '강심장'이다. 속된 말로 하자면, '안면몰수' 화법에 능하다. 확실한 심증과 정황증거들을 갖고 상대편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도무지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질문을 받은 사람이 당황한 기색도 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면, 그게 바로 '안면몰수' 화법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김문기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 김문기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다. 그걸 반박하는 정황증거들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비상식적인 답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상식적으로 답한 건 나중에 나온 이 한마디였다. "숨길 이유가 뭐가 있나." 맞다. 숨길 이유가 없음에도 그는 일단 안면몰수부터 하고 본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버릇이라는 이야기다.

대장동 사태가 터지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환수사업" "모범적 공익사업" 등과 같은 자화자찬으로 치고 나간 것에서부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유동규의 측근 여부 논란에 이르기까지, 이재명의 정치 생애에 그런 '안면몰수' 화법 사례는 무수히 많다. 표를 위해선 말을 자주 바꾸는 '유연성'을 발휘하지만, 자신의 과오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엔 놀라울 정도의 '경직성'을 보인다.

나는 그가 최악의 빈곤 상황에서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되었다는 걸 이해한다.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다. 그러나 이젠 '용'의 반열에 올랐으니 절박하고 처절했던 과거의 버릇과 결별하는 게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신문방송학)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