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던 땅"이라던 카자흐에.. 푸틴, 최정예 부대 투입한 속셈은

이철민 선임기자 2022. 1. 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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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러시아 특수부대원 2500명이 카자흐스탄에 투입되면서, 영토 확장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셈에 관심이 쏠린다.

푸틴은 이전부터 “소련 해체는 20세기 최대의 재앙”이고,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같은 곳은 “한 번도 나라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접한 카자흐스탄 북부는 과거 소련 시절 이주한 러시아계 인구가 밀집해,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하자 이곳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해 왔다.

6일 카자흐스탄 남부 대도시인 알마티 시청이 시위대에 의해 불에 탄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의 유혈 소요 사태로, 우크라이나를 겨냥하던 푸틴에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강경진압이나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가는 카자흐스탄의 민족주의 확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 러시아 “카자흐인들은 한 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 없다”

푸틴은 2014년 8월 “카자흐인들은 아무도 국가(state)로 알지 못했던 땅에 나라를 세웠다”며, “그들은 한 번도 자기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카자흐인들이 자신들을 ‘카자흐 칸국(1456~1487)’의 후예로 여기고 매년 건국 기념행사를 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러시아 정치인들은 “아무도 안 살던 땅에 러시아인이 이주했다” “소련 해체 후에 선물로 빌려 준 땅”이라는 말도 한다. 심지어 소련의 반(反)체제 학자였던 알렉산드로 솔제니친도 ‘러시아 영토’를 주장했다.

특히 카자흐 북부의 상당 지역은 1991년 소련 해체와 카자흐스탄 독립 때부터 계속 분쟁 대상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인구는 아예 러시아와 유대감을 갖는다.

◇ 러시아, 소련 해체하면서 ‘분쟁지역’ 꼽은 4곳 중 3곳 침공했다

1991년 러시아의 첫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은 러시아 주변 4곳을 주요 분쟁 대상으로 꼽았다. 조지아의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와 크림 반도, 카자흐 북부였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4년 돈바스에 식별 안되는 무장세력을 투입해 장악했고,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카자흐 북부에 ‘문’이 열렸다.

◇ 29년 독재자 나자르바예프, 카자흐 민족주의‧독립 살려

카자흐의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는 곳곳에 자기 동상을 만들고, 수도 이름도 자기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바꿀 정도로 개인 숭배를 강요한 독재자였다. 2019년 자신의 심복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도, 최근까지 ‘보안위원회’ 수장을 맡아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자르바예프가 유일하게 잘한 것은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카자흐 민족주의를 살리고 미국‧유럽‧중국과의 ‘균형 외교’를 추구한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중국의 시진핑에게 ‘카자흐 안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북부의 러시아계 인구가 밀집된 정도를 보여주는 지도. 인구의 70%가 러시아계인 지역은 가장 붉게 표시돼 있다./위키원드

1991년 독립 당시, 카자흐인 인구는 러시아인보다 적었다. 오랜 기근과 소련의 계속된 이주정책 탓이었다. 나자르바예프는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예 러시아인이 많은 북부 도시 아스타나(후에 누르술탄으로 개명)로 옮기고 카자흐인 이주를 장려했다. 또 카자흐어를 국어로 채택했다. 이제 전체 인구에서 카자흐인은 65%, 러시아계는 21%(2009년 센서스)다.

◇ 러시아, 체첸 강제 진압한 최정예 특수부대 투입

푸틴이 이번에 투입한 부대도 예사롭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제45여단 스페츠나츠(엘리트 특수부대)는 체첸 반군을 잔인하게 진압해 악명 높은 부대이며, 조지아 침공, 크림반도 합병 때도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최정예 특수부대 중 하나인 제45여단 병력이 CSTO 회원국인 카자흐스탄의 소요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러시아는 2500~3000명의 병력을 보내며, 다른 회원국이 70~500명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TASS 연합뉴스

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주변국 6개국으로 구성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가 실제로 투입된 최초의 사례다. ‘외국 침략’이 아닌, “외국서 훈련된 테러단의 소행”(카자흐 총리 주장)을 막으려고 CSTO군을 투입한 것은 조약에도 없는 요건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소련)가 주도하는 군사동맹은 진짜 ‘방어적’이라, 회원국만 침공한다”는 소련 시절 농담을 소개했다.

CSTO는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회원국에겐 ‘양날의 검’ 같은 존재였다. 러시아가 CSTO를,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중국과 서방의 영향력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CSTO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이 지역에 외국군 기지가 설치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대신에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무기를 할인된 가격에 공급 받고, 러시아의 군사훈련에 동참할 수 있었다. CSTO에 속한 독재자들은 정권 연장을 위해서도 이 기구가 필요했다.

2019년 5월 16일, 29년의 독재에서 물러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심복인 토카예프(왼쪽) 당시 임시 대통령과 함께 수도 누르스탄에서 열린 '아스타나 경제포럼'에 입장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에도, 카자흐스탄의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기 정권을 유지하려고, 전임자가 30년간 애썼던 민족적 주권을 훼손하고 외국군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CSTO 회원국 독재자들은 동시에 러시아의 영토적 야욕을 늘 의심했다. 러시아군이 조지아‧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에, 이 회원국들은 ‘지지’ 성명을 내지 않았다.

◇러시아, 현 정권의 친(親)러 성향 확고히 하는 ‘제한된’ 목적 노릴 듯

러시아군은 한번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푸틴은 자신의 최대 위업을 ‘영토 수복’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카자흐 북부를 병합할까.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6일 “이는 자칫하면 카자흐스탄의 민족주의를 부채질하는 등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당장 ‘땅뺏기’ 행보를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카자흐 소요는 친(親)서방으로 달렸던 조지아‧우크라이나 민주화 운동과는 다르다. 현정권의 경제실정이 촉발한 것이지, 러시아와 경제‧군사 관계를 단절하려고 일어난 사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자르바예프나 후임인 토카예프 모두 노골적인 카자흐 민족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카네기-모스크바 센터의 드티트리 트레닌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러시아가 무려 7644km에 달하는 최장의 육지 국경을 맞대는 카자흐스탄에 들어가는 ‘모험’을 한 것은 “이번 기회에 벨라루스의 독재자 루카셴코 대통령처럼 카자흐의 현 정권을 러시아에 보다 충실하게 조종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다각적인 외교를 펴왔던 카자흐스탄의 외교‧경제 노선을 보다 친(親)러시아로 정리하는 선에서 기존 정권을 세우는 제한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나드 칼리지의 알렉산더 쿨리 교수는 NYT에 “직접적인 양보를 얻기 보다는, 모스크바와 워싱턴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해 온 토카예프 정권에 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봤다.

물론 토카예프 현 정권이 무너지면, 러시아의 셈법은 보다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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