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생각만 하지말고 일단 저지르자

한겨레 2022. 1. 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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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한 해를 돌아볼 시기가 되니 여러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일들이 가슴 한구석에 가장 오래 머무른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내일로 미루면서 산다. 바쁜 오늘 때문에 당장은 급해 보이지 않는 일 같아 내일로 미룬다.

하지만 내일로 미루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영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젊은 시절 짝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오래 간직되는 이유도 그렇다. 시도해 보지도 못한 아쉬움과 후회 때문에 평생 가슴에 간직하며 산다.

최근 수제 떡볶이를 판매하는 아저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기자가 인터뷰 전 아저씨가 운영하는 사이트나 포스팅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수가 수천 개에 육박했다. 수제 떡볶이 사업을 하면서 꾸준하게 SNS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궁금했다고 한다.

기자가 아저씨를 만나자마자 꾸준하게 포스팅을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SNS를 소통 창구로 매일 올리시던데 힘들진 않으세요?” 그의 답이 걸작이었다. “블로그 강의를 들었는데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어요. ‘여러분, 1일 1포 스팅 힘드시죠? 힘드셔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가늠하는 것이 아니고, 시도해야 하니까요.’ 해보지도 않고 가늠만 하고 있다간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에 머리를 탁 맞았어요. 그래서 조금만 틈이라도 있으면 포스팅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질문했다. “코로나 19의 최고 승자가 누구인지 알아요?” 모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질문을 던진 그는 두리번거리더니 빙긋이 웃으며 답을 알려 주었다. “코로나 19 이전에 무리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이어요.” 모두 수긍하는 표정이자 더 흥이 났는지 한마디 더 보탠다. “저질러야 남는 것이 있어요!”

집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는데 수제 떡볶이 아저씨의 인터뷰와 모임에서 친구의 말이 귓가에 떨어지지 않았다. ‘저질러야……’ 나도 코로나19 이전에 몇 번 해외여행의 기회가 있었다. 매번 시간이, 돈이, 하면서 미루고 미루었다. 결국, 미루고 고대했던 내일은 모든 것이 막혀 버렸다. 조준만 하다가 새가 다 날아가 버린 셈이다. 성당 자매님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2017년에 처음 해외여행을 갔는데 하필 간 곳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근처 모로코였다. 비행기 표도 3개월 할부로 갈 수 있었다는 호시절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때 저지른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고. 어쩌면 우리의 삶은 ‘조준 발사’가 아니라 ‘발사 조준’이 되어야 한다. 저지르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시간이 되면 다 수습되는 것이 인생 아닌가.

평생 영어 선생으로 살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한마디, “영어를 말하기 위해선 입을 크게 벌리고 영어를 큰소리로 자꾸 말해야 합니다.” 조금 어색해도 직접 말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대개 소극적으로 주저주저한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에게 역설했다. “여러분, 말하세요. 외국인이 된 것처럼 발음을 굴리세요. 자꾸 자기가 외국인인 것처럼 발음을 굴리고 큰 목소리로 영어를 따라 하세요. 처음에는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발음도 달라지고 영어도 정말 잘하게 됩니다. 영어를 말할 때 문법 등 요모조모를 따지지 말고 그냥 뱉으세요. 이미 난 외국인이고 영어 발음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발음을 마구 굴리세요.”

가끔 물건을 파는 사람의 홍보에 부딪힌다. 그는 청자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상품으로 유혹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때 무언가를 얻어 가는 사람은 ‘손을 번쩍 드는 사람’이었다. 손을 번쩍 드는 사람에게 기회가 먼저 주어졌다. 맨날 손부터 먼저 드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정답을 알아?” 친구는 말했다. ‘아니, 그냥 일단 들어보는 거지.’ 준비된 사람들이 손을 드는 때도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땐 손을 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단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선에선 조준이 정확해야 과녁을 맞힐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란 사격장에선 그러다간 한 발도 못 쏘고 내려오는 경우가 흔하다. 평생 조준만 하다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실패를 자산으로 보지 않는 고약한 사회 분위기 탓일 수도 있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심리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다. ‘남보다 먼저 도모하면 능히 남을 앞지를 수 있다.’라는 ‘선즉제인(先則制人)’이라는 옛말도 새롭지 않다. 경영에서도 계획보다 전략이고, 전략보다는 실행이다. 지금 시대에 시작은 50이 아니라 90이다. 심각한 표정은 버리고 그냥 발사하라. “문을 나서면 여행의 가장 어려운 관문은 지난 셈이다.”라는 네덜란드 속담도 있다.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어설프고 부족해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하면서 고쳐나가면 되니까. 특히 요즘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어차피 완벽한 결과나 정답을 찾기 어렵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정답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정답은 ‘하는 사람’만 알 수 있다. 그것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특권 아닐까 한다.

내년에는 여행이든, 봉사든 기회가 오면 앞뒤 재지 않고 ‘조준보다는 발사’하겠다.

글 최백용/ 전직 영어교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 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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