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 버텨" 영업제한 시간에 불 밝힌 자영업자들
집회·삭발식도 예정.."일방적 희생 강요 마라"
한계 다다른 자영업자 많아 정책 조정 필요
자영업자들의 '방역패스'에 대한 반발이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성심껏 따라왔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 없이 통제만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자영업자들은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점등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영업허용, 실질적 보상을 위한 소통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추가 집단행동도 예고했다.
"장사하게 해달라" 무릎 꿇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대위)는 지난 6일 영등포구의 한 카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4일까지 '점등시위'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점등시위는 영업시간이 끝난 오후 9시 이후에도 간판과 가게의 불을 켜 두는 '소극적 저항'이다. 자대위 관계자는 "완벽히 사전 준비된 조직행동은 아니지만, 전국 자영업자들이 점등시위 진행에 공감하고 있다"며 "향후 더 많은 자영업자가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대위는 자영업계의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따라 부득이하게 점등시위를 시작한다고 했다. 지난달 정부에 △방역패스 철회 △영업제한 철폐 △소상공인 지원금 확대 △손실보상법 대상 확대 △근로기준법 5인 미만 확대 적용 반대 등 요구사항을 전달한 바 있다. 이중 최근 지급이 결정된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외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는 오히려 더 강화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어 온 자영업자들의 릴레이 연설이 이어졌다. 조지현 자대위 공동대표는 "국민 보건을 위해 자영업자들이 2년간 희생했지만 남은 것은 거리로 내몰린 직원뿐"이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외쳤다. 이어 발언에 나선 허희영 대한카페연합회 대표는 "2년간 빚으로 빚을 막았지만 버틸 수가 없다. 정부가 자영업자를 찌르고 찌르다가 이젠 총질까지 하고 있다"며 "제발 장사만 하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했다.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참치집을 운영 중인 함희근씨는 "정부의 500만원 손실보상 선지급 조치는 굶어서 쓰러진 사람에게 500원 주며 빵을 사먹으라 하는 것"이라며 "실질적 보상이 어렵다면 장사하게 해달라"고 지적했다. 공신 전국호프연합회 총무이사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원금보다 영업을 허용하는 것이 자영업자를 살리는 길"이라며 "지원금을 병상 확보와 의료진에 집중 투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점등시위는 시작일 뿐, 추가 집단행동 준비
점등시위에 대한 호응은 예상보다 컸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오후 9시 30분경에도 회견장 근처 식당들은 불을 켜고 점등시위에 동참했다. 타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인근의 식당 여러 곳이 손님을 받지 않으면서도 불을 켜 둔 상태였다. 종로 젊음의거리에도 불을 켜 둔 식당·주점이 종종 눈에 띄었다. 몇몇 매장은 배달을 진행하지 않는 곳임에도 불을 켜두고 있었다.
분노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날선 반응도 나왔다. 서울 종로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자영업자들은 지금껏 정부 정책에 성실히 따르며, 최소한의 보상만 요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방적인 기준으로 결정된 소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며 생색을 내고 있다"며 "이미 많은 자영업자가 오래 전부터 집단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점등시위는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배려가 담긴 '착한 저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대위는 점등시위는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실질적 보상을 위한 소통에 나서지 않으면 규탄시위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자대위는 오는 10일 오후 여의도에서 정부 방역정책 규탄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타 자영업자 단체들도 움직이고 있다. 경기도상인연합회는 7일 오후 100% 손실보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은 오는 12일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창호 전국호프연합회 대표는 "정부의 지원금 등 정책이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권마다 사정이 다름에도 대부분 지원이 일괄적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최근 결정된 지원금도 결국 소급적용은 해주지 않았다"며 "자영업 단체들과 논의를 했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집단행동을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소통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달라"고 설명했다.
한계 몰린 것 사실…"정책 재설계해야"
실제로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에 몰려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숙박·외식업종 대출 총액은 82조6841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2년 사이 38%나 늘었다. 같은 시기 전체 자영업자 대출액은 사상 최대 수준인 88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 대비 14.2% 늘었다. 이렇듯 대출액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는 설명이다.
1인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1인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270만원 수준이었다. 월평균 가계지출은 290만원대로 사업소득보다 많았다. 매월 20만원씩 적자가 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는 대출로 버티기도 어려워진다. 대출 만기 연장조치가 오는 3월 끝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대출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자연스럽게 '빚으로 빚을 막는' 식의 버티기 전략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물론 정부는 버팀목·희망회복자금 저리대출과 손실보상 등의 지원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미 손실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대출 기반의 금융지원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손실보상액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입은 손실을 메우기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종별 영업 실태를 반영한 규정을 마련해 인원 밀집을 분산시키는 등의 지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출 지원은 결국 언젠가 갚아야 할 돈만 늘어난다는 점에서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에 불과하다. 이미 손실을 입은 기간도 길고 금액도 커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늪에 빠진 자영업자가 늘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당장 영업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방역지침을 현실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석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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