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백돌이가 싱글 되려다 이혼당할 뻔했죠

2022. 1. 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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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수원CC.

골프에 입문한 시간과 장소다. 올해로 만 19년을 넘겼다. 수원CC는 회원제인 데다 서울에서 가까워 지금도 골퍼들에게 인기다.

직장 선배가 강요하다시피 밀어붙인 끝에 골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늦을세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정신없이 차를 몰아 골프장에 도착했다.

골프장에 레스토랑이 있는 줄 당시엔 몰랐다. 티오프 시간 2시간 전이어서 클럽하우스 문을 열기도 전이었다. 혼자 덩그러니 주차장에서 눈을 잠시 붙인 후에야 캐디백을 내렸다. 초보 백돌이에게 그날 타수의 의미는 없었다. 공을 찾으러 정신없이 필드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한 홀에 10타 안팎의 타수 자체를 셀 수 없었다. 공 찾으랴, 클럽 챙기랴, 라인 살피랴 스코어가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캐디가 적은 스코어를 보고 알 뿐이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부터 느림보 습관을 없애야 한다면서 선배가 몰아붙이는 바람에 클럽을 휘두른 후에는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가혹했지만 지연플레이 습관을 애초 길들이지 않은 점에 고맙게 생각한다.

맑은 하늘, 탁 트인 페어웨이, 가을 단풍, 그리고 마냥 뛰어다녔던 기억밖에 없다. 좌충우돌 백돌이 시절이었다.

초보 때 실내연습장에서 드라이버와 7번 아이언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다음해 4월에서야 드디어 고양 소재 서서울CC에서 100타를 깼다.

아침 6시께 티오프를 했는데 98타를 기록해 감격했다. 특히 쇼트 홀과 롱 홀에서 각각 파를 1개씩 잡아 날아갈 듯이 기뻤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그렇게 기쁜 때가 있었던가. 아내에게 스코어 카드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제 시동이 걸렸다 싶어 실내연습장 이용권을 끊어 아침저녁으로 매일 연습에 매달렸다. 3개월 정도 레슨도 받았다.

하지만 90타를 깨는 것은 지난한 과업이었다. 당시 가평의 썬힐골프장을 가장 많이 이용했는데 90대 초반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100타 안팎으로 올라왔다.

교습가는 늘 그립과 에이밍, 셋업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클럽을 휘둘러 공을 멀리 보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 달에 2~3번 정도의 라운드 경험으로 쉽게 90타를 깨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한창 직장생활 하느라 골프에 전념할 여건도 아니었다.

꿈의 80대 타수로 들어온 곳은 이듬해 5월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 89타였다. 서코스는 전장이 긴 남코스나 동코스와 달리 비거리가 짧은 골퍼도 정교한 샷을 구사하면 스코어를 내는 데 유리하다.

골프를 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가 90타를 깼을 때다. 이제 하수는 물론 고수와도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80대 타수였다. 골프장만 다르면 걸핏하면 90대 초중반을 넘나들었다. 결국 3번 연속 80대 타를 기록한 후에야 동료들에게서 80대 타수를 인정받았다.

이젠 골프를 즐기는 맛을 알았다. 코스매니지먼트를 하고 쇼트게임의 중요성도 드디어 깨달았다.

골프를 마감하고 코스를 복원하는 능력도 그제야 생긴 것 같다. 그날의 멋진 샷보다 결정적인 순간 OB나 4퍼트를 범한 뼈아픈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됐다.

주말마다 골프장을 찾아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와도 참 많이 싸웠다. 우승했다며 호주머니를 털어 선물과 돈을 주며 달래기도 했다.

직장 상사나 중요한 외부 인사와의 골프라서 빠지면 곤란하다며 숱한 핑계를 댄 것도 기억한다. 80대 타수 골프 시절이 가장 설레고 흥분됐던 것 같다.

2008년 5월 경기도 서하남 소재 캐슬렉스CC에서 76타로 드디어 아마추어 골프의 로망인 싱글 타수를 입문 6년 만에 이뤄냈다. 전반 1타, 후반 3타를 넘겼다.

지금도 스코어 카드를 보관 중이다. 집에 매트를 깔아놓고 매일 퍼트 연습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어쩌다 한 번이지 안정된 티샷, 정확한 아이언샷, 정밀한 퍼트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에만 싱글 타수가 나왔다. 걸핏하면 80대 중후반, 심지어 남양주 해비치CC 같은 골프장에선 여전히 90대 타를 쳤다.

2009년 10월 강원도 횡성 성우리조트의 오스타CC(현 웰리윌리)에서 첫 이글이 터졌다. 롱 홀에서 핀까지 70m를 남기고 웨지로 친 공이 그린 왼쪽에서 경사를 타고 홀로 빨려 들어갔다.

인상에 남는 골프는 세계기네스골프대회 참가와 미국 서부 명문 골프장 견학이다. 2009년 군산CC에서 하루 75홀을 도는 기네스골프대회에 참가했다.

해가 가장 긴 하짓날 아침 5시 30분께 열려 저녁 6시 30분에 끝났다. 샷건 방식으로 400여 명이 출전했는데 탤런트 이경규 등도 참가했다.

이날 60대 여성이 완주를 마치고 맨 마지막으로 들어와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국 기네스협회 관계자가 방한해 공식인증을 받았다.

미국 서부 명문 골프장 견학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 인근 세븐틴 마일스(17miles) 내 4개 명문 골프장(페블비치, 사이프러스 포인트, 스파이 글라스 힐스, 스페니시 베이), 샌디에이고 라코스타CC를 잊지 못한다.

거장 로버트 트렌트 존스가 직접 설계한 골프장을 찾았고 골프 휴양도시 팜스프링스에서의 라운드는 다시 오기 힘든 추억이다. 잔목이 듬성듬성한 바위를 넘어 공을 날리던 쇼트 홀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래도 가장 추억할 만한 일은 첫 홀 인원. 2012년 10월 2일 서하남 캐슬렉스 마지막 홀에서다. 이 골프장은 싱글 타수와 홀인원을 함께 안겨준 추억의 명소다.

계곡을 건너 올려다보는 120m 홀에서 9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턱을 맞고 그린으로 올라갔다. 그린에 올라와보니 사라진 공이 홀에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홀인원을 공개한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지방에 근무할 때인데 오전에 업무보고를 끝내고 골프장에 들른 것이다.

자랑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상상이 되리라. 주일에 목사가 홀인원을 한 격이었다.

이후 10년이 지나도 홀인원 소식은 없다. 싱글 골퍼로 진입하려면 집 한 채 날린다고 하지만 이혼당하지 않은 것만도 용하다는 생각이다.

퇴직한 이후 줄곧 80대 초반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서서히 타수가 밀린다. 열정은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일주일에 1~2번 필드를 찾았는데 앞으로 1번으로 줄이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골프비용도 만만치 않다.

새해 백돌이는 90대, 보기 플레이어는 80대, 80대 타를 치는 분은 싱글의 꿈을 이루기 바란다. 홀인원까지 겹치면 더욱 영광이다.

▷골프교수가 말하는 단계별 타수 깨기

골퍼에게 100대’90대, 90대’80대, 80대’싱글 타수 진입은 로망이다.

① 100타를 깨려면 무조건 양파(더블 파) 방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티샷부터 공을 홀에 집어넣는 퍼트까지 최선을 다한다.

OB나 페널티(해저드) 구역이 있으면 무조건 피해서 샷을 한다. 매 라운드마다 스코어를 정확히 매기고 한 타씩 줄여나간다.

② 90대 타를 깨려면 일단 3퍼트를 없애야 한다. 벙커에선 무조건 탈출을 목적으로 한다. 매 홀마다 핀에 공을 붙이지 못하면 어프로치로 무조건 온 그린시킨다.

③ 싱글 골퍼가 되려면 때론 티샷을 3번 우드나 유틸리티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에이밍(조준)과 얼라인먼트(정렬)를 PGA 프로선수와 똑같이 해서 비거리를 늘린다.

어프로치를 위해 칩샷, 피치샷, 로브샷, 플롭샷 등으로 공을 높이 띄우거나 스핀을 먹여 핀에 붙이는 방법을 읽히도록 한다. 롱 퍼트와 숏 퍼트를 동일하게 잘해내도록 하는 것도 관건이다.

<도움말=김명선 한국체대 특임교수>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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