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매고 봐야 할 박소담의 거침없는 질주, '특송'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무표정한 얼굴로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를 흥얼거리던 박소담은 잊어라. 1월 12일 개봉하는 영화 '특송'(감독 박대민, 연출 엠픽쳐스)의 원톱 주연을 맡은 박소담이 핸들을 잡고 풀 악셀을 밟으며 거침없이 내지르는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가 되어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짜릿한 카체이싱과 살벌한 액션이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드는 건 물론이다.
'특송'은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백강산업의 에이스 은하가 예상치 못한 배송사고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 대외적으로는 폐차 처리 영업장이지만 실은 '우체국 택배에서 안 받는 건 다 배달하는' 일종의 특송 전문업체인 백강산업은 돈 되는 일이라면 지명 수배자든 물건이든 제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배달해주는 곳. 확고한 일처리를 자랑하던 은하의 군더더기 없는 삶이 꼬이는 것은 스포츠 승부조작 브로커 두식(연우진)의 특송을 맡으면서부터. 약속된 시간에 두식은 나타나지 않고 괴한들에게 쫓기며 살려달라는 두식의 아들 서원(정현준)만 나타난 거다. 어쩔 수 없이 서원을 떠맡게 된 은하는 그로 인해 경찰과 국정원의 타깃이 되어 쫓긴다.
'특송'은 장점이 확실한 영화다. 영화 초반 은하의 신들린 운전 실력과 담대한 기지가 돋보이는 카체이싱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불법 주차와 공사 현장 등으로 방해되는 지형지물이 많은 한국 특유의 주택가 골목길부터 넓은 왕복 차선을 거침없이 질주하는데, 스크린에서 눈을 못 뗄 만큼 꽉 찬 몰입도를 자랑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엄청난 코너링과 드리프트가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이요, 쫓기던 와중 눈 깜짝할 새 시동을 끄고 중립기어로 전환해 비탈길을 미끄러져 도망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질 만큼 위트가 넘친다. 매끈하고 화끈한 카체이싱에는 역동적인 카메라 구도와 스피디한 편집이 '하드캐리'한다. 지난해 '모가디슈' '발신제한' 등에서 한국영화의 카체이싱에 감탄했다면 '특송'은 그 감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것이 분명해 뵌다.
카체이싱과 액션을 책임진 박소담은 이 영화에서 거듭 칭찬을 보내도 모자랄 만큼 분투를 보여준다. 전반부에서 카체이싱 연기가 돋보인다면, 후반부에서 박소담은 간단한 실생활 속 무기 하나 들고 맨몸으로 수많은 남성을 상대하며 육탄전을 벌인다. 특히 어둠이 깔린 백강산업 사무실 내에서 인간병기마냥 상대를 차례차례 제압하는 신은 리얼리티와는 별개로 시선을 압도한다. 황상준 음악감독의 감각적인 OST가 곁들여지며 극적인 효과와 쾌감을 높인다. '마녀' 김다미, '낙원의 밤' 전여빈, '마이 네임' 한소희 등 여배우들의 액션 도전은 그 자체로 언제나 화제를 모아왔는데, '특송'의 박소담 역시 백강산업의 액션 신만으로도 여성 액션 계보도의 한 축을 차지할 것 같다.
그리고 독특한 컬러의 악역 경필을 연기한 송새벽. 현직 경찰이자 깡패로 투 잡을 뛰고 있는 경필은 300억원이 들어 있는 계좌의 보안키를 되찾고자 두식의 아들 서원과 그를 보호하는 은하를 집요하게 쫓는 인물이다. 경찰이자 깡패라는 아이러니, 웃으면서 눈 한 번 깜짝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랄함 등은 절로 '레옹'의 게리 올드먼을 연상케 한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분위기를 잘 살려 오버액션으로 분출하지 않고도 듣도 보도 못한 빌런을 완성시킨 송새벽의 강렬함은 영화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끝까지 내지르게 만드는 원동력, 즉 은하가 서원을 목숨 걸고 보호하게 되는 감정의 서사가 다소 짧게 처리된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보호하겠다는 타인의 선의가 과연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그 의문은 서원을 보호하는 은하를 돕고자 함께하는 백강산업 백 사장(김의성)이나 차량 수리 전문가 아시프(한현민)에게도 동일하게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탈북자로 설정된 은하를 뒤쫓는 국정원 요원 미영(염혜란)의 캐릭터를 좀 더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차할 때마다 차를 긁기 일쑤인 미영이 신들린 운전 실력의 은하와 대비시키는 장면이 있었다면 살벌한 와중 개그 포인트가 됐을 것 같은데.
교통체증처럼 꽉 막힌 관객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특송'. 박진감 넘치는 카체이싱과 강렬한 액션으로 무장한 맞춤형 팝콘 무비다. 거칠 것 없이 내지르는 108분을 레이싱카에 탄 듯 함께 질주하면 된다. 추운 날씨에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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