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한 꼬집

기자 2022. 1.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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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적당한 재료에 적당한 양념을 가미해 적당하게 조리해 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적당히'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어서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잘 안 먹힌다.

누군가의 곁에서나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우는 시대가 아닌 책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시대이니 더더욱 그렇다.

이런 시대에는 가늠이 어려운 '적당히'가 아닌 정확한 수치 뒤에 부피, 무게, 시간 등 딱 부러지는 단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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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적당한 재료에 적당한 양념을 가미해 적당하게 조리해 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적당히’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어서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잘 안 먹힌다. 누군가의 곁에서나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우는 시대가 아닌 책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시대이니 더더욱 그렇다. 이런 시대에는 가늠이 어려운 ‘적당히’가 아닌 정확한 수치 뒤에 부피, 무게, 시간 등 딱 부러지는 단위가 요구된다.

요즘은 영어 단어 레시피(recipe)가 마치 우리말의 일부처럼 쓰이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대량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이것이 필요하겠지만 가정에서는 감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감은 주로 부사로 표현되는데 ‘조금’과 ‘넉넉히’ 사이의 거리는 꽤 될 텐데 감으로 그것을 가늠한다. ‘자작자작하게’나 ‘고슬고슬하게’는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느낌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갖은 양념’은 그 가짓수와 양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으나 결국 재료와 양념이 조화를 이루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레시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자주 보이는 단위가 ‘큰술’과 ‘작은술’이다. ‘술’은 숟가락이니 큰술은 밥숟가락 정도의 크기이고 작은술은 찻숟가락 정도의 크기이다. 숟가락의 크기도 제각각이니 이마저도 정확한 단위라고 하기는 어렵다. 손의 크기는 저마다 다른데 한 움큼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끔은 ‘꼬집’이라는 귀여운 표현도 발견된다. ‘꼬집다’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일 텐데 결국 엄지와 검지로 집을 만한 정도의 적은 양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이는 정확한 양을 가리키기보다는 넣은 듯 안 넣은 듯 감으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레시피와 계량 도구를 늘어놓고 하는 요리는 아직은 미덥지 않다. 한 움큼 재료를 한소끔 끓여낸 후 한 꼬집 양념으로 간을 맞춘, 감으로 한 요리가 여전히 정겹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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