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으며

나희덕 기자 2022. 1.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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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아버지 책장 속 ‘도스토옙스키’

내 문학의 첫 자리로 돌아가

소설 속 인물 통해 다시 발견하는

가난한 家長이자 한 인간 아버지

내 안에 남아 있는 가부장 신화와

종교적 근원 비추는 다면체 거울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올해의 다짐이나 계획 같은 걸 거창하게 세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인 목표를 하나 정했다.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한 질을 사 두고는 완독하리라 마음먹었다. 25권으로 구성된 전집까지야 어렵겠지만, 그의 대표작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려고 한다. 이것만 해도 두꺼운 책 11권이니 상당한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시점에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시집만 해도 읽어야 할 책들이 산적해 있는데, 매력적인 현대 작가들도 차고 넘치는데, 굳이 두 세기 전의 어둡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을 집어 든 것일까. ‘백치’에 나오는 구절처럼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는 연령”인 56세에 이르러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 인간의 본성이나 진정한 삶에 대한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스스로 그 이유를 묻다가 문득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 있던 정음사판 도스토옙스키 전집이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도스토옙스키의 신봉자였다. 1970년대 중후반, 가난한 살림에도 정음사판 전집을 구입해 읽고 또 읽으셨다. 아버지의 책장에는 그 외에도 톨스토이, 알베르 카뮈, 존 스타인벡, 함석헌, 이어령 등의 책들이 꽂혀 있었고, 나는 그 책들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곤 했다. 10대의 문학소녀가 이해하기는 너무 어려웠지만, 아버지의 책장을 엿보며 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문학의 첫 자리로 돌아가 본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실제적 필요에 의한 독서가 아니라, 시 쓰기나 시 수업과 직결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용한 독서를 해 보고 싶었다. 흔히 고전이란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인 동시에 의외로 누구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나 역시 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오다 보니 방대한 고전 소설들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너무 일찍 만났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고전들을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유예된 독서를 이제라도 해보려는 것이다.

우선, 도스토옙스키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부터 읽었다. 스물여섯 살에 쓴 데뷔작이라 미숙한 느낌이 들고 과잉된 감정 표현이나 장광설이 많지만, 그의 대표작들에서 꽃피우게 될 인물이나 소재, 주제의식의 원형이 들어 있었다. 이 소설은 가난한 하급 관리 데부시킨과 병약한 여성 바르바라가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바르바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유한 비코프와 애정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것으로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낡고 단순한 신파극처럼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지만, 두 사람의 편지 속에는 사랑과 도덕의 문제를 둘러싼 예리한 통찰과 당대 문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곳곳에 박혀 있다.

특히, 데부시킨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웠다. 자신은 하숙집 부엌방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면서도 바르바라를 헌신적으로 돕고 배려하는 심성을 지녔다. 서류를 정서하는 기계적 업무를 하지만, 자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그는 문학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기도 한다. 바르바라가 추천해 준 고골의 ‘외투’에 대해서는 혹평하며 화를 내는 한편, 라타자예프의 저급한 연애소설은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런 감식안은 바르바라의 문학적 취향이나 안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편지의 문체나 격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라 심리적 가난이나 지적 가난에 대한 분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난한 가장으로서, 또한 자존심 강하고 한없는 사랑을 지닌 인간으로서 고투하던 그 시절의 아버지가 데부시킨과 자주 오버랩됐다. 필경사(筆耕士)라는 직업의 공통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데부시킨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서류를 정서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종교적 이상과 현실적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며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데부시킨을 비롯해 여러 인물에게서 자신의 분신을 발견했던 듯하다.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기로 한 데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프로이트는 원초적 아버지가 아들들에 의해 살해된다는 자신의 이론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확인한 바 있다. 나에게도 그 심리적 난제가 오래된 숙제처럼 놓여 있다.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과 죄의식, 그리고 내 안에 남아 있는 가부장의 신화와 종교적 근원에 대해서 도스토옙스키라는 다면체 거울을 통해 대면하고 질문해야 할 시기가 됐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 이제는 ‘죄와 벌’을 다시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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