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관의 피' 최우식,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
엄청난 성공 뒤에는 부담이 따른다.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눈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뿐더러 스스로도 이전의 성공을 뛰어넘길 바란다. 갈망은 욕심을 부르기 마련이고, 욕심은 위태롭다. 자신을 갉아먹던 부담감을 내려놓은 최우식은 이젠 과정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영화 '경관의 피'(감독 이규만)는 위법 수사도 개의치 않는 광수대 에이스 강윤(조진웅)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의 위험한 추적을 그린다. 최우식은 극중 할아버지, 아버지부터 이어 온 경찰의 피를 이어받아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민재 역을 맡았다. 수사는 적법한 절차를 거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민재가 위법이더라도 효율적으로 범죄자를 검거하는 강윤을 만나 신념이 흔들리는 걸 느낀다.
최우식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의 엄청난 성공 이후 차기작을 고르는데 부담을 느꼈다. 당시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는 등 한국 영화 역사상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고민을 거듭하던 최우식은 '경관의 피'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첫 작품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시작하게 됐어요. 카메라가 어딘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걱정, 고민, 부담감이 없이 즐기면서 연기했죠. 누군가가 시켜서 연기를 한 게 아니니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도 생기고 연기적인 부족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 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청룡영화상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슬럼프가 왔고, '기생충'이 사랑받을 때도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기생충'의 모든 식구들이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더 좋은 작품, 더 좋은 모습,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거예요. 제가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일에 대한 욕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어요. 어떤 장르를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될까 싶어서 시나리오도 많이 보고 고민했죠. 그러니 깔끔하게 답이 나오더라고요. '과정에서 행복하게 찍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자'였죠.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경관의 피'는 감독, 배우, 스태프가 한마음이 돼 한 신, 한 신 고민하면서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는 영화라는 확신이 생겨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고민 끝에 '경관의 피'에 출연하게 된 최우식은 그만큼 캐릭터를 역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성장하는 민재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강단 있고 남성미가 풍기도록 그리려고 마음먹었다. 초반 민재의 신념과 사상이 강윤을 만나 충돌하는 모습부터 이를 딛고 강력한 경찰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명확하기 표현하려고 했다고.
"많은 분들이 저를 볼 때 남자다운 걸 못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최우식이 보여줄 수 있는 남성미는 무엇일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진실되게 표현하자고 생각했어요. 어리숙한 신입이 성장하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남자다움인 것 같아요. 제가 비실비실한 이미진데, 민재를 통해 제 남자다움을 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원칙주의자인 민재는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석했어요. 언더커버로 몰래 들어가서 강윤을 의심하는데, 의심하는 표정조차 확실하게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관객들은 민재의 시선을 따라서 강윤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예 모든 감정을 배제할 순 없었어요. 최대한 절제하되 애매한 부분은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만들었어요."
액션을 통해서도 남성미를 강조하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접근 방법이 감정 연기와 달라 큰 매력을 느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유도를 기반으로 한 액션에 일상에서 쓰는 움직임과 달라 더욱 매료됐다고. 액션스쿨에 다니면서 합을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도 재밌었다. 영화 '존 윅', '메트릭스'와 같이 액션으로 꽉 찬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비주얼적으로는 명품 수트를 입은 경찰을 표현하면서 차별점을 두려고 했다. 극 초반 야상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민재가 어느 순간부터 구두와 깔끔한 수트를 착용한다. 이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수트는 탁월한 외적 장치였다. 의상을 입으면 행동이 달라지기에 연기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강력반 하면 운동화에 야상점퍼를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수트 패션은 민재의 성장을 보여주면서 강윤과 닮아간다는 걸 상징해요. 범인을 잠기 위한 강윤의 서선, 강윤이 갖고 있는 신념을 수트를 통해 체험한 거죠. 민재가 점점 강윤에게 물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 장치예요."
배우 조진웅, 박희순, 권율, 박명훈 등과의 호흡도 작품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최우식은 박희순과는 '마녀'에서, 박명훈과는 '기생충'을 통해 각각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최우식은 이들과 호흡하는 것만으로 장면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자랑했다.
"조진웅 선배님과 투톱 버디 무비라는 장르에서 호흡하는 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죠.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조진웅 선배님일 정도였으니까요. 박희순 선배님은 제가 엄청 좋아해요. 제가 힘이 들 때마다 많이 의지해요. 제가 많은 걸 준비하지 않아도 선배님과 있으면 다 만들어지기 때문에 행복했죠. 아쉬운 건 박명훈 선배님과 마주치는 신이 없었다는 거예요. '기생충'으로 만나서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선배님인데 다음에는 호흡하고 싶어요."
"제가 친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형들과 케미가 좋은 것 같아요. 자라면서 습득한 형제애가 현장에서 발휘되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죠. 작품은 진지하게 찍지만, 모니터 뒤에서는 서로 노래도 듣고 커피도 마시면서 아주 재밌게 지냈어요."
최우식은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았다. 이제야 뭔가 큰 그림을 보고, 과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전에는 과정을 느낄 새도 없이 엉덩이에 불붙은 사람처럼 연기했다면 이제는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 즐기면서 연기할 수 있게 된 지금 더 좋은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를 보였다.
"많이 지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는데 10년을 한 게 스스로도 신기해요. '10년 동안 좋은 여정이었다'는 마음이죠. 물론 정글 숲처럼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천천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천천히 쭉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10년 차가 되면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된다는 부담도 생겼다. 영화 '경관의 피'와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비슷한 시기에 홍보하면서 절실히 느끼게 됐다고.
"영화 작품을 홍보할 때는 늘 든든한 선배님들이 있어서 깔끔하게 정리해 줬어요. 전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깔끔하게 되지 않아요. 그런데 '그 해 우리는'에서는 이걸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제가 제 작품을 조리 있게 설명을 못하는 게 아쉬워요. 앞으로 이럴 상황이 많을 텐데 고민이에요. 전 아직 선배님들이랑 있는 게 좋은데 후배들이 많이 생기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끈다기보다는 다 같이 두루두루 재밌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최우식의 2021년은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해였다. 부담을 내려놓고 과정을 즐기면서 재밌는 걸 하기 위해 찾아 헤맨 시간이었다. 예능프로그램 '윤스테이'부터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영화 '경관의 피'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자기애를 돌아볼 수 있었다. 모든 작품들을 행복하게 찍을 수 있었기에 행복한 해라고 기억될 거라고 뿌듯함을 표했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색깔이 다른 장르 등에서 다양한 제 얼굴이 나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저에게는 좋은 에너지죠. 그래서 2022년은 기운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즐거움을 따라가기 위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제가 되고 싶어요."
현혜선 기자 sunshin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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