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생명공학' 전성시대..'테라노스'판 사기극도 판친다

정종오 2022. 1. 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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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과학' 보다 화려한 '영화' 좇은 바이오기업의 몰락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3일(현지 시각) 생명공학 기업인 테라노스 사기 사건으로 기소된 최고경영자 홈즈의 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과학전문매체 네이처는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의 유죄 판결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번 사건이 생명공학과 바이오기업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는 데 주목했다. 혈액 한 방울로 여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기술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킨 주인공이 테라노스의 홈즈였다.

네이처는 이 사건을 분석 보도하면서 “바이오기업에 있어 동료평가와 검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바이오기업은 화려한 ‘영화’보다는 객관적 ‘과학’을 좇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전문매체 네이처는 테라노스와 홈즈(앞에 마스크 쓴 이) 사기극을 보도하면서 "동료검토 등 객관적 검증이 생명공학 기업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네이처 홈페이지 캡처]

홈즈는 혈액 검사의 혁신을 내세웠던 장본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 기업의 가치는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신약과 백신 등에 대한 기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과 무관치 않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성과도 없는 상황에서 유명인과 투자자를 내세우고, 갖은 포장을 통해 사기극이 일어날 확률도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테라노스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홈즈에 대한 사기 혐의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의도적으로 투자자를 속였다는 게 배심원단의 판단이었다. 약 4개월 동안 재판 끝에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아직 선고는 내려지지 않았는데 홈즈는 최대 20년 징역과 엄청난 벌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에 네이처가 주목한 것은 ‘과학적 사실 확인’이었다. 네이처는 관련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을 통해 생명공학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며 무엇보다 초기 연구를 검증하는 동료검토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생명공학 기술은 어떤 식으로든 과대 포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마운트 시나이(Mount Sinai)병원 엘레프테리오스 디아만디스(Eleftherios Diamandis) 박사는 앞서 2015년 테라노스의 과장된 연구 결과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두고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며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거대 생명공학 기업이 계속되는 실수로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테라노스는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이다. 기술개발보다는 유명인과 투자자 유치 등 포장에만 급급했다.

홈즈는 2003년 19세의 나이로 테라노스를 설립했다. 스탠퍼드대를 중퇴하기 직전이었다. 홈즈는 혈액 몇 방울로 200개 이상의 테스트를 실행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홈즈는 기술개발을 공개하고 검증하기 보다는 유명 인사를 앞세웠다. 유명한 고문과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조지 슐츠(George Shultz) 전 미국 국무부 장관,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전 국방부 장관 등이 테라노스 이사회에 합류했다. 투자자 중에는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전 미국 교육부 장관 벳시 디보스(Betsy DeVos)의 가족도 포함됐다.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부유촌인 팔로알토에 본사를 둔 테라노스는 짧은 시간 안에 수억 달러를 모금했다. 8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형 회사로 성장했다.

투자자와 많은 이들은 테라노스가 혈액 샘플을 분석하기 위해 신(新) 기술을 개발했다고 믿었다. 실제 테라노스가 만든 기술로 몇 가지 테스트는 실행할 수 있었다. 이외 테스트는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기존 혈액 검사 장비였다. 혈액 한 방울로 진단할 수 없었고 기존 진단검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춘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그는 20년 징역형과 엄청난 벌금을 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뉴시스]

시애틀 워싱턴대의 진단개발자 폴 예거(Paul Yager) 박사는 “제대로 된 검출을 하기 위해서는 분자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혈액 한 방울에는 진단할 수 있는 샘플 자체가 부족하고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디아만디스 박사가 테라노스 기술의 결함을 지적한 이후 월스트리트 저널의 전문기자가 이를 집중 분석 보도하면서 홈즈의 사기극이 하나씩 들춰지기 시작했다. 테라노스가 만든 기술의 한계와 단점, 과대 포장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홈즈와 테라노스 전 사장 등을 대규모 사기혐의로 기소했다. 10년 동안 상장기업의 이사와 임원으로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마침내 지난 3일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홈즈의 11가지 혐의 중 4가지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번에 유죄 입증된 것 중에 홈즈가 자신의 기술을 소개할 때 화이자 등 제약 대기업의 로고를 사용했던 것도 포함됐다. 마치 제약 대기업이 테라노스의 기술을 인증한 것처럼 보여졌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테라노스의 화려함 뒤에 기술적 진보는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네이처는 “테라노스는 책과 영화는 물론 팟캐스트 등을 통해 화려한 연구 결과를 홍보했다”며 “이 과정에서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생명공학은 화려한 영화나 책, 팻캐스트가 아니라 객관적 연구 사실을 검증받고 이를 통해 확인하는 과학적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홈즈가 동료 검토에 참여했다면 투자자를 유치하기 이전에 기술의 문제점을 발견했을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테라노스는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기 보다는 투자자를 유치하고 유명인을 끌어들이는 곳에만 집중했다. 우선순위가 뒤바뀌다보니 사기극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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