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윤석열-이준석 화해날 없던 세 가지..사과, 가치, 그리고 예의
[경향신문]
“자, 이제 다 잊어버립시다.”
6일 저녁 국회 의사당 예결위원회 회의장이 박수 소리로 울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준석 당 대표와 ‘데탕트’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내일 당사 방 한 켠에 침대를 하나 놔 달라”며 협력을 약속했다. 그가 지난달 21일 상임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16일째 되는 날이었다. 갈등을 해소한 기쁨이 너무 컸던 탓일까. 이날 이들에게는 세 가지가 없었다.
먼저 윤 후보는 이 소모적인 갈등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뒤 그가 예결위장으로 들어선 언론사 기자들에게 처음 내놓은 말은 “다 잊어버리자”,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해 다 함께 뛰자”는 것이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결코 쇠하지 않았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을 그리게 됐다”며 감격할 뿐이었다. 사과는 이 대표의 한 마디가 전부였다. “‘저 인간이 왜 저러나’ 했을 우리 당원들과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죄송한 시간이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며 의총 공개를 주장한 이 대표가 28분 동안 진행한 발언에서도 ‘사과’ ‘죄송’ 단어가 향한 대상은 ‘야당 생활이 힘들었을’ 의원들이었다.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에서도 윤 후보의 사과는 없었다. 유권자들은 ‘저 인간’을 넘어 ‘저 후보’, ‘저 정당’을 우려했을 것이다. 국민통합을 말하는 제1야당의 대선 후보에겐 걸맞지 않은 태도였다.
극적 화해의 이유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두려운 건 이기지 못하는 것”(백브리핑),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여한이 없겠다”(모두발언). 이 대표의 말에서는 대선 승리를 향한 집념과 열망만이 느껴졌다. 그뿐이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35분까지 장장 10시간30분 간 의총을 이어갔다. 그 결과 공개된 발언 어디에서도 무엇을 위한 승리인지, 무엇을 위한 정권교체인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돌아보면 다툼의 원인도 매머드 선대위 구성이나 윤핵관·이철규·신지예로 대변되는 인사, 선거 전략의 향배였지 가치나 비전이 아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도 내홍은 있었다. 김종인 당시 국민행복추진위원단이 박근혜 후보와 결별을 언급할 만큼 극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그래도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의 방향이었다. 지금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무엇을 위해 갈등을 이어간 것일까.
예의도 없었다. 의총을 마친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당 의원들의 박수와 갈채 속에 국회를 나섰다. 행선지는 시내 물류센터 신축현장 화재를 진압하다 사망한 소방관들의 빈소였다. 이 대표는 “제가 당대표로서 그리고 택시운전 자격 가진 사람으로서 후보님을 손님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라며 운전자 역할을 자처했다. 한시간 뒤엔 기자들에게 “한시간여 운행 동안 지난 2주일 공백을 일시에 메울 수 있는 참신한 선거 전략이 논의됐다는 후문”이 국민의힘 공식 메시지로 나왔다. 비극에 대한 위로가 당내 협력을 알리는 이벤트로 쓰여도 좋은 것일까. ‘빈소에선 그러지 않았다’지만 모두에게 공개되는 현장에서 빈소에 간다는 정치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공지는 곧 지워졌지만, 그 이후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일부 의원의 “정권교체” 메시지가 꾸준히 올라왔다.
국민에게 사과할 줄 아는 대선 후보, 국가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고민하고 적절한 언어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정치인. 한명 한명 동료 시민의 아픔에 옷깃을 여밀 줄 아는 사람. 이런 기대가 특별한 요구일까. 윤 후보는 5일 선대위 쇄신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의 출마 선언문 첫머리에 적힌 단어는 ‘상식’이다.
정치부|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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