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현관문 나서면 아웃도어, 어반 하이킹의 매력

한겨레 2022. 1. 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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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등산장비 이야기
도시서 즐기는 하이킹 인기
운동화 신고 가볍게 출발
나만의 하이킹 코스 짜고
숨은 장소 모험하는 재미
서울 시내에서 바로 연결돼 도심 하이킹 장소로 인기가 높은 종로구 인왕산.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아웃도어 액티비티들이 합종연횡하고 있다. 등산과 달리기가 합쳐진 트레일 러닝이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액티비티의 하나가 되었고, 전통적인 캠핑 스타일과 오토캠핑(RV Camping)의 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차박’이 대세라고들 한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온갖 격투기 기술을 한데 모은 이종격투기가 전통적인 권투보다 인기가 높고, 등반 기술에 스포츠 룰을 적용한 스포츠 클라이밍은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원형을 그대로 고집한다면 지루하고, 우리는 지루한 것을 못 견뎌 한다. 무엇이 원조인지는 여러 가지 따져봐야겠지만 무슨 맛집도 아니고 의미 없는 일이다. 그저 오늘 가장 맛있으면 되는 것이다.

서울에서 ‘어반 하이킹’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이현상 제공

집 앞의 길은 곧 산책로

어반 하이킹(Urban Hiking)은 장거리 하이킹의 경험을 도시에서 재현하는 것으로, 도시에 있는 공원, 산책로, 그리고 도시와 연결된 근교 산 등산로를 연계하여 걷는 도시형 아웃도어 레저 활동이다. 미국의 뉴욕이나 덴버 등의 도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반 하이킹은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모르나 구글링을 해보면 꽤 많은 문서와 사진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약 8만4천여개(지난해 12월 기준)의 #urbanhiking 태그 콘텐츠가 검색된다. 대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생뚱맞지도 않은 것이다.

2021년 국가통계포털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5183만명 중 도시 인구는 4757만명으로 인구의 92%가 도시에 살고 있다. 산림청 소속 국립산림과학원의 2020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산림이다. 산림 비율로 따지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73.1%), 일본(68.5%), 스웨덴(68.4%)에 이어 4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웃도어 환경에서 멀리 있다는 것은 일종의 오래된 ‘착각’이다. 아마도 세계 어떤 대도시에서도 우리나라만큼 쉽게 도시 산책로와 등산로를 연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단과 교차로 등 도시 환경을 일부 포함하지만 주로 도심의 쇼핑몰이나 문화유적 등을 둘러보는 도시 관광과는 달리 공원 산책로와 산과 들판 등 도시에서 가까운 자연환경에서 하이킹을 즐긴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도시 관광과는 차이가 있다. 환경이 약간 달라졌을 뿐 하이킹이 목적이다.

어반 하이킹의 가장 큰 장점은 대단한 각오와 준비 없이도 자신의 역량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라는 점이다. ‘불금’ 후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가벼운 운동화와 일상복에 텀블러 하나만 들고 나설 수 있는 게 어반 하이킹이다. 좀 일찍 서두른다면 하이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 또 다른 일정을 가질 수 있다.

문을 나서면 바로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이 큰 장점이지만 어반 하이킹의 또 다른 매력은 자신의 경험과 체력에 따라 스스로 경로를 만들고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점이다. 모험은 아웃도어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인왕산을 찾는다면 서촌 골목의 아기자기함을 즐기다가 산길을 오르고, 그게 부족하다면 하루쯤은 각오를 다져 북악산을 연결하여 걷고 북촌과 삼청동의 골목 여행을 한다면 더없이 풍요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 북악산까지도 부족하다면 더 전진해서 정릉으로 해서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 능선으로 오를 수도 있다. 아마도 이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은 장딴지가 뻐근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 있다.

서울만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각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걷기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도를 잘 살펴본다면 길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도시나 집 앞의 길은 곧 산책로로 이어지고 가까운 산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스스로 길을 연결하고 나만의 하이킹 코스를 만들어보자. 그리고 모험의 수준을 점차 높여보자. 천왕봉이나 대청봉을 줄지어 오르는 일반적인 등산 코스보다 스스로 길을 찾고 연결하여 디자인한 어반 하이킹이 단연코 더 모험적이다.

인왕상 둘레길에서 본 서울 풍경. 이현상 제공

도시 이야기를 만나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현대 문명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비록 많은 골목과 유적들이 제 모습을 잃긴 했지만 도시 곳곳은 여전히 풍부한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반 하이킹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인상적인 도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도시 산책로와 오래된 골목을 연결하여 걷는다면 담쟁이 덮인 벽돌담과 세련된 커피집, 작은 동네책방,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다. 비록 하산길에서 도토리묵과 파전은 어렵겠지만 분위기 좋은 작은 커피집에서 주인장이 내려주는 맛있는 드립 커피가 막걸리보다 좋은 날도 있다.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쓴 지도 만 2년이 지나고 있다. 우리는 사각형의 작은 방과 사무실에 갇힌 채 온라인 사회관계망 이외의 사회적 유대 관계를 목말라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뛰쳐나가 춤추고, 마음껏 걷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은 폭발 직전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고, 다른 도시로의 장거리 여행은 언제든지 제한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코로나 이후 더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더 많은 사람이 홈트레이닝에 진심이다.

발상의 전환이 클 필요도 없다. 그저 텔레비전 화면에 홈트레이닝 가이드를 틀어놓고 운동을 하는 것보다 시선을 문밖으로 돌려 오래된 골목과 걷기 좋은 산책로를 연결해보자. ‘아! 이런 곳을 나만 몰랐다는 말이야?’라고 감탄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반 하이킹은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아웃도어가 늘 대단한 각오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장비를 점검해서 배낭에 담거나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돌아와서 다시 정리하는 일을 매주 반복하는 것은 차라리 스트레스다. 주중에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난 주말 늦은 아침 알록달록한 등산복 대신 기분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데일리 룩으로 아웃도어를 즐겨보자.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기록한 사진들은 여느 산의 정상 비석을 붙잡고 찍은 인증샷보다 훨씬 세련된 콘텐츠이며, 소셜미디어(SNS)에서 더 많은 ‘좋아요’를 얻을 수 있다. 약간의 수고스러움으로 얻을 수 있는 도시 전망은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어반 하이킹은 세련된, 그리고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 액티비티다. 아웃도어의 범위는 유연하며, 바야흐로 라이프스타일과의 경계는 희미해진 시대다.

하이킹용 신발에 바람막이 재킷

어반 하이킹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몇가지를 점검해보자. 우선 들머리와 나가는 곳의 위치와 교통편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방문할 지역의 핫플레이스를 미리 알아둔다면 더 흥미로운 어반 하이킹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복장이다. 어반 하이킹은 높은 산에서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한 아웃도어 활동이다. 아웃도어 활동은 항상 예상하지 못한 위험요소가 숨어 있다. 길게는 10㎞ 이상을 걸어야 하므로 무엇보다 하이킹용 신발을 신는 게 좋다. 먼 길에서 발이 편하면 머리가 편해지는 법이다. 완전 방수 재킷은 아니더라도 물에 쉽게 젖지 않는 바람막이 재킷도 챙기는 게 좋다. 그리고 휴대폰은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 출발하자. 오래된 골목과 예쁜 카페, 그리고 뜻밖의 멋진 풍광을 보면 휴대폰 카메라 앱을 수시로 실행할 것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도심에서 목적지를 찾아가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산책로에서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수시로 필요하다. 물론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내려온다고 해도 가까운 곳에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이 있겠지만 말이다.

이현상(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 〈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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