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정치 없이 인권 없다" 통렬한 중국 문명 반성..금서이자 베스트셀러로

진달래 2022. 1. 7.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간 '송나라의 슬픔'
지난달 23일 홍콩의 홍콩대 교정에 설치된 중국 천안문 사태 추모 조각상 '수치의 기둥'(위 사진)이 인부들에 의해 철거되고 있다.(아래 사진) 홍콩=AFP 연합뉴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의 급성장한 경제력은 물론 중국 정부가 덮고 싶어하는 인권 문제를 동시에 노출시켰다. 미국, 독일, 영국을 포함한 최소 9개국 외교 담당 장관이 올림픽에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해 중국 인권 문제는 어느 때보다 부각됐다.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신장 지역 강제노동 의혹 등은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막힌 중국의 현실을 조명한다. 이런 중국의 현실을 정확히 알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이것이 신간 '송나라의 슬픔'의 시작점이다. 소수 민족 투자족 사람인 저자 샤오젠성은 중국의 주요 왕조 문명을 분석하고 근대의 아편전쟁 신해혁명을 비롯해 1946년 헌정운동까지 파헤쳐 자국 문명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려고 했다. 수천 년 역사를 뜯어보면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풀어내고 중국 문명 전환이 실패한 이유를 밝혀 현재의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현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품고 있고 결국 금서가 됐다. 2007년 출판될 뻔했다가 중국 정부의 검열에 막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본토의 금서'는 2009년 홍콩에서 출간돼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가 '후난일보' 기자로 20여 년간 자료 조사를 하며 모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중국 문명사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가, 목말랐던 사회에 단물이 됐다. 찬란했던 중국 문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히 짚어낸 이 책은 갈수록 중국과 가까워지는 한국의 독자에게도 이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기회를 준다.

지난달 5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장자커우=연합뉴스

책의 첫 장은 중국도 서명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이 유혈 진압된 후로 중국의 국력이 날로 강해졌고 각종 인프라도 개선됐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부패와 불공정 분배, 도덕적 해이 등이 대표적이다. 뒤처진 중국의 정치개혁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경제 발전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정치체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열린 정치 없이는 인권 보장을 논할 수 없다"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 종교 신앙의 자유 등 헌법이 규정한 인권을 위해선 반드시 정치 개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개혁 방향을 찾기 위해 역사를 되짚어 보자는 게 저자의 의도다. 그는 "서구의 선진 정치 모델을 학습하는 동시에 중국 역사 속의 유익한 경험들과 교훈을 흡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위대한 중화 문명 부흥'을 외치면서 정작 무슨 문명인지, 무엇이 위대한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모든 민족은 반드시 자신의 역사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국의 문명사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문명의 정수와 찌꺼기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고 이로써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바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송나라의 슬픔. 샤오젠성 지음·글항아리 발행·600쪽·2만9,000원

저자는 송나라를 주요 예시로 소개한다. 본받아야 할 이상적 사회에 가깝다고 봤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송나라의 슬픔'으로 지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원작명은 중국 문명을 반성한다는 의미인 '중국문명적반사(中國文明的反思)'이다.)

송나라는 경제, 문화, 사회, 복지 등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 문명을 자랑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실제 화약, 나침반, 활자인쇄술 등 위대한 발명이 있었던 시대다. 황제가 존재하지만 실질적 통치 내용에는 민주주의의 여러 씨앗이 잉태돼 있었고 화려한 상업문명 속에 부의 분배는 오늘날보다 훨씬 나았다고 평했다. 지방 분권이나 사상적 다양성도 보장됐던 사회다. 저자는 "송대 이후 중국은 과도한 황제 중심의 중앙·권위주의적 사상 중심 사회로 변모했고 검열과 폭력으로 일관하다가 서양에 의해 왕조 시대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며 그 전철을 답습해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