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상력으로 위기 속에서 기회 찾은 김영삼·김대중"
'가장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최근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지지율 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설문 문항이다. 거대 양당 후보의 비호감도가 유례없이 높게 나타나는 데 따른 현상이다. 후보의 가족 관련 문제와 비리 연루 의혹, 당 내분 등이 다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 조건에 대한 고민은 잊힌 지 오래다.
역사 유튜버이자 방송, 강연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저자가 생각하는 차기 대통령의 자격 요건은 상상력이다. 그는 신간 '리더의 상상력'에서 우리 삶을 바꿀 새로운 대통령은 리더의 자리에 어울리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보지 못하고 엄두를 내기 힘든 탁월한 상상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14대 김영삼 대통령, 15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10년에 주목한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떠나 그들이 이끈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격변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 가장 크고 분명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저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개혁의 리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부의 역할을 재창조한 리더로 정의한다.
책은 김영삼·김대중 두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그린 전반부와 두 대통령 재임 시기의 정치·사회 변화상을 담은 후반부로 크게 나뉜다.
저자에 따르면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 김영삼은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국회 안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투쟁을 이어갔다. 김대중은 정권의 폭압을 직접 몸으로 견뎌내며 반독재 투쟁의 상징이 됐다. 본질적 측면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두 사람이지만 협력과 양보를 기대할 수 없었기에 대한민국 야당사는 김영삼과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두 세계로 나뉘었다.
두 사람은 각각 우여곡절 끝애 마침내 권력을 현실화한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를 단행한 개혁의 리더였다. 이전 정부로부터 텅 빈 국고를 넘겨받은 채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한국 경제의 구조 조정과 질적 변화를 꾀했고 대북 햇볕정책,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리더였다.
그러나 저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 궤적을 좇는 것이 영웅 만들기나 우상화를 위한 작업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이들의 실천의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잉태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논의됐지만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한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전향적 개혁 조치는 국민의 '개혁 피로증'으로 이어져 이를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한 혁신적 조치로는 연결 짓지 못했다. 노동 분야에서도 갈팡질팡했다. 노동 3권을 비롯한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나날이 강해졌지만 당시 노동부는 사업자부로 불릴 정도로 기업과 정부의 공생을 위한 부서로 기능하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정보기술(IT) 산업에서의 벤처 기업 창출로 국가의 미래 방향을 제시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우면서 수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했다. 노동과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했다. 저자는 노동 문제와 부의 불평등,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폭발적 증가 등의 문제에 한해서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리더십은 '사회라는 생물', '시장이라는 생태계'에 완벽하게 패배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들이 집권한 10년 역사의 복기를 통해 리더의 정치적 상상력을 논한다. "정치는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며 대통령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를 책임지고 미래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할 지도자에게 선례는 중요한 참고사항이고 우리에 방향을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두 정치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지만,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 "유한한 권력을 손에 쥔 리더가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 확인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냉철하게 살펴보려는 시도"로서는 일독의 이유가 충분한 책이다. 이제 제20대 대통령 선거까지는 62일 남아 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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