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0.01% 하락에 "집값 잡았다"

정순우 기자 2022. 1.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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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 중고가전제품 판매점에 진열된 TV에서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중계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드디어 집값을 잡았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3일 신년사에서 “최근 주택 가격 하락세를 확고한 하향 안정세로 이어가겠다”며 포문을 열자 청와대 수석,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등 고위급 인사가 총출동해 연일 비슷한 발언을 하며 집값 하락이 빨라질 것이라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정부 주장에 통계적 근거가 있기는 하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셋째 주 서울 은평구 아파트 값이 1년 7개월 만에 처음 떨어졌고, 그다음 주에는 도봉·강북구 아파트 값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여파로 작년 말부터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은 끊겼고 매물은 쌓이고 있다.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데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정부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북·도봉·은평 아파트 값은 지난 12월 넷째 주 0.01~0.02% 떨어졌지만 서울 평균으로는 여전히 0.04% 올랐다. 강남·서초 등 부촌은 평균보다 더 올랐다. 집값 ‘하향 안정’을 주장하는 정부 인사들은 이런 수치는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3구(區)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현 정부 들어 작년 11월까지 100% 넘게 폭등했다. 조금 떨어졌어도 대다수 수요자가 느끼기에 여전히 너무 비싸다. 인터넷에는 “100원하던 집값을 200원 만들어놓고 199원 됐다고 생색낸다”는 조롱이 넘쳐난다. 0.01% 하락을 ‘하향 안정’이라고 포장해야 하는 정부 관료들도 낯이 뜨거울 것 같다.

정부는 과거에도 몇 주 치 주간(週間) 시황을 근거로 집값 안정을 예단했다가 이후 집값이 반등하면서 체면을 구긴 일이 여러 차례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은 주식시장과 달리 천천히 움직이는 데다 계절적 변수도 많기 때문에 3개월 치 이상 추세를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 지역을 추가하거나 해제할 때에도 3개월 치 집값 변동을 주요 근거로 활용한다. 정부 스스로도 단기적 집값 변동이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최근 또다시 1~2주 치 변동률만으로 시장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집값 하락 주장이 오는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보통 1~2월은 계절적 비수기여서 집값 오름세가 주춤하는데, 이것을 정부 정책 효과인 듯 포장해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려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 주거 안정으로 직결되는 주택 정책이 정치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지만 선거를 앞둔 지금의 정부와 여당에는 소귀에 경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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