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8] 가벼운 예술, 무거운 삶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2. 1.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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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 contact, 2005년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다. 만약 삶의 시계가 멈추는 때를 미리 알고 있다면 결말부터 보게 된 공포 영화처럼 뭔가 바람 빠진 느낌이 들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므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하루하루는 각성 없이 느슨하고 지루해질 것이다. 나에게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깨어 있어야 하고 또 깨어 있을 수 있다.

황규태(84)는 디지털 미디어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도 활발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작가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표현 양식이 정립되는 젊은 시절에 익숙해진 방법이 평생 작업 방식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고려하면 황규태 작가는 확실히 비범하다. 1960년대에 직업으로 사진을 시작한 그가 줄잡아 60년 정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매체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작업 방식과 생활 속에 침투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애초에 그의 예술적 관심사가 생활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와 기술, 과학이 이끄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그의 작품과 삶이 있다.

꽃을 사이에 두고 기계와 맞잡은 손은 외계인이나 원시인처럼 보인다. 외계인이라면 아직 맞이하지 않은 생명체이고, 원시인이라면 아주 먼 옛날의 시조다. 미래 또는 과거가 기술과 만나면서 여는 세상은 잔뜩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기묘하게 펼쳐진다. 사진에 등장하는 요소는 대부분 작가가 직접 찍지 않고 잡지와 같은 인쇄물에서 복사 촬영한 것이다. 이 작품은 상투형의 모방과 복제를 통해서 도덕적 엄숙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새로운 연결이 이끄는 미래에 대한 경고와 희망을 분명히 드러낸다. 소셜미디어에서 스스로를 날라리, 건달, 꼰대 등으로 칭하는 황규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예술은 경박하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은 한없이 무겁다. 그렇게 예술가는 오늘도 성성하게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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