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장항부두
[경향신문]
금강 하굿둑을 지나서 장항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장항제련소가 눈에 들어온다.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설립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 근대산업을 이끌어 온 종합비철금속제련소는 장항의 경제적 부침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장항에서 민속을 기록하고 민간기록물을 수집하는 지역 연구자의 안내로 장항제련소 뒤쪽에 있는 장항 신항으로 갔다. 그날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닷바람은 어찌나 칼날 같은지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곳에는 붉은 망사 스타킹 같은 대형 그물이 바닥에 널려있고 외국인 노동자 서너 명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물코를 꿰고 있었다. 이들이 칼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것은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우리에게도 고학력자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가족들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던 아픈 기억이 있지 않은가.
부두 노동자들 뒤편으로 유부도 앞 갯벌과 개야수로가 보인다. 유부도는 갯벌이 살아있기에 철새의 기착지가 되는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한때 돈이 되는 산업이었기에 다른 지역의 부러움을 샀던 제련소이지만 이제 쓸쓸히 퇴장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기수역에서 살아있는 갯벌을 간직한 유부도가 진정한 보물인 것을 사람들은 이제 알게 되었다. 철새들은 가장 험한 경로인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시아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알래스카까지 북상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기에서 쉬어 간다. 이곳이 철새들과 함께 부두노역자들의 따뜻하고 포근한 기착지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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