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혼다 잡은 현대차에서 벤치마킹할 몇 가지 전략들

김준 경제에디터 2022. 1.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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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년 벽두부터 국내 산업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 자동차 간판업체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달성하며 일본 브랜드 혼다를 35년 만에 추월했다고 한다.

김준 경제에디터

현대차와 기아가 혼다를 제친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혼다는 도요타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로, 특히 연구·개발 능력이 높기로 유명하다. 자동차 업계에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혼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1990년대에 이미 세계 최정상 자동차 경주대회인 F1 그랑프리에서 맥라렌팀과 우승을 거머쥐었고, NSX라는 걸출한 미드십 스포츠카를 발표하기도 했다. 혼다는 현대차가 포니 누적판매 30만대를 자축하던 1982년부터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중형차 어코드를 생산해왔다. 40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아온 혼다는 그만큼 현대차그룹이 상대하기 벅찬 상대였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여겨지던 혼다를 현대차와 기아는 어떻게 추월했을까. 많은 매체가 반도체 수급난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혼다보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기에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시적인 추월’일 가능성에 방점이 좀 더 찍힌 분석이지만, 이는 완전한 답이 아니다. 나는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약진한 가장 큰 이유가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품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북미 올해의 차’를 자동차 부문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는다. 현대차 제네시스 G70와 기아 텔루라이드 등 몇몇 모델이 2019년부터 3년 연속 이 상을 받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제네시스의 약진이 눈부시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4만9621대가 팔렸다. 전년 대비 무려 202.9% 성장한 것인데, GV80 덕에 심각한 사고를 당하고도 목숨을 건진 타이거 우즈 효과 때문이란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품질이 그만큼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현대차그룹 ‘품질 혁신’에는 해외 전문가의 역할이 컸다.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실과 연구소의 최고위직을 과감하게 외국인 전문가에게 맡겼다. 순혈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당대 최고 자동차 디자이너라 불리는 피터 슈라이어와 루크 동커볼케, 벤틀리에서 영입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은 현대차와 기아의 디자인을 혁신했다. ‘달리고 멈추며 회전하는’ 자동차의 기본기는 고성능 브랜드의 대명사 BMW M에서 잔뼈가 굵은 알버트 비어만 전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장이 일본차를 능가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두번째는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잇따라 미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이미 17년 전에 앨라배마에 공장을 짓고 ‘미국산 쏘나타’를 생산 중이다. 기아도 2009년 조지아에 공장을 세우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 하나라는 텔루라이드를 만든다. 일본 업체들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최대한 발빠르게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해 현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연 것이다.

정의선 회장의 미국 시장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세번째 약진 비결로 꼽을 수 있겠다. 정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에 2015년 이후 모두 참석할 만큼 미국 시장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전시·박람회에서 전 세계 언론을 상대로 직접 브리핑을 하는 재벌 회장은 국내에서 정 회장이 유일하다. 그는 지난 4일(현지시간) CES 2022 개막을 앞두고 열린 설명회에서도 로봇개 스폿을 반려견 산책시키듯 무대로 데려와 그룹의 미래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비전을 역설했다. 노동조합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겠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의 최근 모습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투쟁이나 파업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하는 정황이 뚜렷하다. 현대차는 2019년 이후 3년 연속 무파업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 오랫동안 출입하면서 생긴 바람이 하나 있다. 그 꿈은 정 회장이 더 간절히 꾸고 있을 것 같다. 현대차그룹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닛산과 혼다는 넘어섰다. 내친김에 미국 시장 1위 도요타마저 꺾어주길 바란다.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가능성이 있을까. 물론이다. 삼성이 반도체 분야에서 도시바, 소니를 꺾을 줄 누가 알았을까.

김준 경제에디터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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