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막을 수 있는 살인, 한번 제대로 막아보자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22. 1.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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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2년에 2054년 워싱턴을 배경으로 범죄를 예측하고, 범죄자를 검거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선 3명의 예언자가 일치된 의견으로 범죄 발생을 예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3명 중 1명이 다른 예시를 할 때도 있다. 이 별개 의견을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영화에서 주인공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무시하고 범죄를 진압하다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을 초래하였다. 영화 결말에서 주인공은 범죄 발생 전 상황에 집중하면 예시된 살인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필자는 범죄예방에 관심이 있었기에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고, 강력범죄를 예시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강력범죄를 다 예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시 현상이 있는 강력범죄는 분명히 예방할 수 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은 강력범죄를 예시한다. 많은 사건이 있지만 한두 개를 들어보면 2021년 11월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스토킹으로 인해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3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이 분명히 있었고, 피해자는 국가에 보호를 요청했다. 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16개월 입양아이가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동학대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역시 아동학대가 분명히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처음 발생한 스토킹과 아동학대 사건을 제대로 처리했다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고, 지킬 수 있었다. 국가가 ‘보호했어야 할 생명’을 놓친 셈이다.

왜 국가는 ‘보호했어야 할 생명’을 지키지 못했을까? 그것은 국가가 ‘사건해결’에만 초점을 맞춰 ‘피해자 보호’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측면에서 강력범죄 발생 시 신속하게 범인을 발견해 체포·구속시키면 국민은 환호와 갈채를 보낸다. 반면 ‘범인 발견’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에 집중하면 ‘수사역량의 부재’ ‘늦장수사’ 등의 거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공권력이 시선을 ‘범인 발견’에 맞추는 강력한 이유다.

법제도적 측면에서 피해자는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데 수사·재판 과정에서 제3자로 취급받는다. 국가 공권력 부재 상황을 초래한 층간소음 흉기난동사건에서 피해자 가족이 수사기관에 사건 당시 CCTV를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또한 마포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황예진씨 유족이 ‘살인죄’ 처벌 가능성을 열어 법원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검찰도 법원도 들어주지 않았다. 수사절차에서 그리고 재판절차에서 피해자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 보호 법률도 부족하다. 현재는 사건별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특정범죄신고자 보호법’에서 강력범죄, 마약범죄 등 신고자를 보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2년 현재 개별 범죄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일반 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률은 없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경찰은 내부 훈령으로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잘못된 예측이 불러오는 인권침해 상황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묵직하게 던지는 또 하나의 교훈은 강력범죄를 예시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분명히 강력범죄를 예시하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건해결’과 동시에 ‘피해자 보호’에도 만전을 기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살인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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