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운명과 의지 사이

2022. 1. 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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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몇 해 전 선배 교수와 새해 첫 인사를 나누며 새해 포부에 대해 물은 일이 있다.

그러자 그렇게 나쁜 틈을 타서 일을 그르쳤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이 아니겠냐는 반박이 들어왔다.

물론 운명적이라 느껴질 만큼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일도 있고, 의지만 있다면 작은 노력만으로 성패가 갈릴 자잘한 일도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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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득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몇 해 전 선배 교수와 새해 첫 인사를 나누며 새해 포부에 대해 물은 일이 있다. 그러자 그분은 준비라도 한 듯이 즉답을 했다. “그런 거 안 가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긴 될 것이라면 꼭 되고 안 될 것이라면 죽었다 깨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새해라고 특별한 포부를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고민거리였는데,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는 ‘천인상승설(天人相勝說)’이라는 작품을 통해 여기에 대해 정면으로 논파했다. 논의의 발단은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겨내고, 하늘이 정하면 또한 사람이 이길 수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었다. 이규보는 동료의 참소를 받아서 9년이나 벼슬을 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죽자 즉각 한림원의 보직을 받아 여러 요직을 거쳐 고위직에 올랐다. 이는 명백히 사람이 하늘을 이긴 사례이다. 특정인이 관직운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주나라의 강태공 같은 사례는 참소하는 훼방꾼 없이도 80세에야 벼슬을 했으니, 이는 하늘이 그리 정한 것일 뿐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규보는 그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자신의 운명으로 본다면 그때도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다만 흉악한 사람이 나쁜 틈을 타서 변고를 꾸민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렇게 나쁜 틈을 타서 일을 그르쳤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이 아니겠냐는 반박이 들어왔다. 그에 대해 이규보는 다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내가 그때에 만일 조금만 참아서 그 사람하고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만 않았더라면 반드시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이니, 실은 내가 자초한 셈이지요. 어찌 운명과 관계있겠소이까?”

운명과 의지를 38선처럼 분명히 그으려 해서는 얻을 게 별로 없다. 물론 운명적이라 느껴질 만큼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일도 있고, 의지만 있다면 작은 노력만으로 성패가 갈릴 자잘한 일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힘만 쓴다면 뒤바뀔 일들이다. 문제는 그때를 놓치면 운명처럼 어쩌질 못하게 된다는 것이며, 자신이 자초한 운명인 줄도 모른 채 하늘만 탓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규보의 글 제목에 들어 있는 말이 참 좋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이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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