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준석은 피같은 당원..피는 물보다 진하다" 극적 화해
李대표 선대위 쇄신안 거부
의총선 사퇴 압박 이어졌지만
이준석 30분간 공개 연설하고
의총 막판 尹 등장하며 반전
尹 "대선 손잡고 승리 이끌자"
李 "당사서 숙식하며 뛰겠다"
대선 두 달 전 초유의 당대표 사퇴 결의는 이날 저녁 시간대까지만 해도 그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이 대표가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쇄신 후속 인선안에 '상정 거부'를 한 것이 결정타였다. 쟁점은 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 인선이었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직접 지목한 이 부총장 선임안에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전략기획부총장은 사무총장과 함께 인사·재정 등 당 사무를 관장하는 선거 국면의 요직이다. 결국 윤 후보가 당무우선권으로 임명을 강행했는데, 이 대표는 "정치적 상황이라고 본다"면서 반대의 뜻을 거듭 밝혔다. 이날 윤 후보는 이 부총장 외에도 선대본부장 겸 사무총장에 4선 권영세 의원,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에 3선 윤재옥 의원, 정책본부장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등을 임명했다.
이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지하철 출근길 인사' 일정을 이날 윤 후보가 깜짝 소화하면서 한때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지에도 관심이 쏠렸지만 이 대표는 "관심 없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윤 후보는 오전 8시 7분부터 40여 분 동안 서울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이 일정은 전날 밤 윤 후보가 전격 결정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전날 권영세 본부장에게 전달했다고 한 '연습 문제'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당초 강북 주거밀집지역 지하철역에 미리 준비한 복장 차림까지 기획해 뒀던 것과 차이가 컸다. 이에 이 대표는 윤 후보의 나 홀로 거리 유세 소식에 "연락받은 바 없다"며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와 윤 후보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번지자 이날 오전 10시쯤 시작돼 오후 8시 30분에야 끝난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이 대표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 수위 높은 발언도 쏟아졌다.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가 "이제 당대표 사퇴에 대해 결심할 때가 됐다"고 말하자 참석한 의원들도 박수로 동의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중진 의원들은 "이 대표가 몽니를 부린다" "이 대표는 '찌질이' 청년 꼰대가 되지 말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이 대표 사퇴 촉구 내용이 담긴 결의문이 작성돼 추인도 이뤄졌다. 당헌·당규상 대표 탄핵 제도가 없어 강제력 없는 요구에 불과하지만 당내 갈등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대표의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때까지도 이 대표는 비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 참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김기현 원내대표가 결의문 발표 전 마지막 중재를 위해 이 대표를 설득했고, 이 대표는 오후 5시가 넘어 의원총회에 참석해 30분간 공개 연설을 했다. 그는 "제가 지난 2주 동안 선대위에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는 많은 젊은 세대가 아직도 우리 당에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가려 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2주 동안 무엇이 바뀌었나"라고 반문했다. 또 "지금 본질은 이준석의 사과와 반성을 시작으로 젊은 세대가 우리 당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만약 오늘 의총에서 의원들이 (선대본) 복귀를 명령하신다면 어떤 직위에도 복귀하겠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방식으론 대선 승리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젊은 층 지지는 절대 같이 가져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연설 이후에도 의원들은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상황은 오후 8시쯤 윤 후보가 의총장을 찾으며 반전됐다. 이 대표는 "후보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국민이 감동을 받는 선거를 만들겠다"고 발언했고, 뒤이어 의총장을 찾은 윤 후보도 "저와 이 대표, 의원 여러분 모두 힘을 합쳐 3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자"며 화해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윤 후보를 의심한 적 없고 후보가 당선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며 "의총을 통해 의원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저 혼자 싸매고 고민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석에서 전날 '연습 문제'라고 표현했던 선거 전략 아이디어도 관철시켰다. 이 대표는 자신이 처음 정치에 입문한 직후 치러졌던 2012년 대선을 언급하며 "당시 당사에서 자기 일처럼 선거를 치르기 위해 눈 벌게져서 나오던 선배들의 뒤를 잇겠다. 당사에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쓰시던 방 한편에 제 침대 하나를 놔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의 한 명으로서 솔선수범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후보는 의총 직후 취재진에게 "화해랄 것도 없다"며 "원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나. 피 같은 당원이다"고 말했다.
[이희수 기자 / 김보담 기자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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