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분노가 반정부 시위로..카자흐 '30년 철권 통치' 흔들

정원식 기자 2022. 1. 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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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상왕’ 나자르바예프 퇴진”
유혈 사태에 비상사태 선포
CSTO “평화유지군 파견”

6일(현지시간) 연료 가격 인상으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시청 건물이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알마티 | 로이터연합뉴스

연료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가 인구 1900만명의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을 뒤흔들고 있다. 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은 물가 인상이지만 배경에는 30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사진)과 집권세력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사태가 격화하면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걸린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국가들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스푸트니크통신 등에 따르면 연초부터 불거진 카자흐스탄 대규모 시위 사태의 중심지인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무장 시위대와 진압 군경이 충돌하면서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보건부는 6일(현지시간) 유혈 사태로 10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그중 400명이 입원했고 60여명은 중태라고 밝혔다. AFP통신은 현지 언론을 인용하면서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수십명이 숨졌고 경찰이 숨진 이들의 신원을 확인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날 새벽에도 알마티에서 시민 수천명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시청 청사와 대통령 관저를 장악하고 물대포, 최루탄, 섬광탄을 쏘는 경찰과 충돌했다. 인터넷 모니터링 단체 넷블록은 이날 “전국적으로 인터넷 통신이 두절된 상태”라고 밝혔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옛 아스타나) 등 4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금 조치를 발동했다. 비상사태 선포 지역은 전날부터 전국으로 확대됐다.

시위대가 알마티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승객과 승무원 77명이 한때 발이 묶이기도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 거주 중인 한국 교민은 940명 정도로 이 중 640여명이 알마티에 집중돼 있다.

카자흐스탄 시위는 지난 2일 서부 카스피해 연안 유전지대인 망기스타우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졌다. 카자흐스탄에서 휘발유 대신 저렴한 차량용 연료로 사용되는 LPG 가격이 1ℓ당 50텡게(0.12달러)에서 지난 1일 120텡게(0.28달러)로 두 배 넘게 오른 것이 도화선이 됐다.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분노가 향하는 표적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소련 해체 전인 1990년 카자흐스탄 최고회의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된 후 2019년까지 30년 가까이 카자흐스탄을 철권 통치했다. 2019년 3월 전격적으로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했으나 이후에도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은 유지하면서 사실상 ‘상왕’으로 군림해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사임하자 수도 아스타나의 명칭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딴 누르술탄으로 바꿨다.

이번 시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권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시위대는 “늙은이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곳곳에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 6개국으로 구성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이날 카자흐스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특히 2004년과 2014년 시민혁명 이후 친서방으로 기운 우크라이나를 놓고 최근 서방 국가들과 갈등 중인 러시아 입장에서 카자흐스탄 정권의 몰락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안보 이슈다. 이웃 국가들은 이번 시위로 자국 내 반정권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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