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싸울 때 아냐"..코너 몰린 이준석의 28분 격정 연설
"대선 패배시 당 해체 생각으로 임해야"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한국 정치사상 첫 30대 제1야당 대표가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200여 일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이 대표가 연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을 비판하자, 원내지도부가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면서다. 이 대표가 "내 발언이 불편했다면 사과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동시에 "지금은 내가 아닌 우리의 안 좋은 모습과 싸워야 할 때"라며 자성을 촉구했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불거진 '이준석발(發) 갈등'이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6일 오전 10시30분부터 진행한 비공개 의원 총회에서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등의 제안으로 이 대표 사퇴 결의를 논의했다. 추 원내수석부대표가 "원내지도부가 아닌 의원으로서 얘기한다"며 이 대표 사퇴를 촉구하자 다수 의원들이 박수로 화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일부 의원의 경우 이 대표를 향해 "사이코패스" "양아치" 등의 원색적 비난을 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의 거취를 두고 찬반 토론이 격해지자 의원들은 이 대표의 의총 참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비공개 의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발언과 의원들의 입장 모두 언론에 공개하자고 했다. 그러나 김기현 원내대표 등이 의총을 비공개로 하자고 맞서며 갈등이 촉발됐다.
이 대표는 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이) 통상적으로 당 대표가 할 수 있는 공개 발언을 이번에는 하지 못 하게 하는 데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공개 발언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조속히 의총을 통해 의원님들과 소통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의원들이 바라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무제한 토론에 응할 자신이 있다. 오늘로 부족하면 며칠에 걸쳐 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경 상황이 반전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의 '즉각 사퇴 촉구'를 결의하는 결의문을 확정했다. 이후 의원들이 논의 끝에 이 대표의 모두 발언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가 의총장을 찾았지만 단 한 명의 의원도 박수를 치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이 대표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사퇴를 요구한 당 소속 의원 60여 명 앞에서 28분 간의 연설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이 대표는 사과 의사를 밝혔다. '연습문제' 등 논란을 촉발한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고 "혼란에 대해 당대표에게 서운하신 점이 있다면 많은 질책을 해달라"고 했다. 다만 당의 현 상황을 진단하며 '모두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본경선 시작지점에서 10%포인트 이상의 우위로 선거에 돌입했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보면 10%포인트 차이로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곳곳에서 경험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대선 후보부터 당대표인 저까지 많은 사람이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에 비해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에 대해 책임있는 당직자 누구나 자신의 문제처럼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후보에게 이탈한 표의 대부분은 20대 30대 40대의 표일 것"이라며 "저는 굉장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제가 선대위 직책을 던지면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포위론, 세대결합론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제가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져도 좋지만 그를 대체할 대전략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며 "영호남 화합론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 3주 동안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제 책임"이라며 "제가 물러나 밖에서 선대위 개편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새로운 방향성이 설정되고 다같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 예상이 틀렸다면 이자리에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제가 지난 2~3주 동안 조소적으로 '이준석 대책위원회'라고 표현한 활동 또한 옳은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제게 선대위 복귀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고, 복귀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선거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감에 의해 복귀하는 것보다 당이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변화해 그들(젊은 세대)이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진다면 당이 해체된다는 생각으로 해달라"며 "우리가 민주당보다 못한 것이 뭐냐"고 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엇을 하든 우리가 (민주당 보다) 우월한 계략을 갖고 있고 다 준비되어 있다"면서 "오직 하나 단결돼 선거 승리를 위해 가겠다고 하면 내일부터 치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연설을 마친 뒤 일부 의원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의총장 분위기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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