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에 선 '투캅스'의 고뇌.. 많이 봤는데도 새롭다

김신성 2022. 1. 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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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관의 피'
원칙주의자 신입경찰과 수사를 위해선 편법도 마다않는 베테랑 형사
바위처럼 단단한 조진웅과 마초영화에 숨통 틔우는 최우식의 조화
박휘순·박명훈까지 남자들의 향기 가득한 한국판 누아르 선보여
‘경관의 피’는 위법 수사도 가리지 않는 광역수사대 에이스 강윤(조진웅·오른쪽)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경찰 민재(최우식·왼쪽)의 추적을 그린 범죄수사극이다. 호호호비치 제공
경찰 영화는 역시 비리나 편법을 다뤄야 제 맛이 난다. 특히 매머드급 내부 비밀조직이 뒤를 봐준다는 설정은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럴싸한 이야기여서 더욱 구미를 당긴다.

바위같이 단단하고 듬직한 조진웅, 보호본능을 자극해 여성팬심을 움켜쥔 최우식이 투톱을 이룬 이규만 감독의 신작 ‘경관의 피’는 ‘챙겨 봐야할 영화’에 당당히 들 만한 작품이다.

아르마니, 제냐, 디올 등 명품 수트를 유니폼처럼 입고 화보에서나 보던 고급 빌라에 살면서 외제차를 험하게 타는 경찰관. 한국 영화에는 처음 선보이는 뜻밖의 캐릭터라 반갑다. 단번에 객석의 눈을 빼앗아가는 힘이다.

민재(최우식)는 동료의 강압수사를 눈감아 주지 못하고 증언할 만큼 원칙을 지키는 신입 경찰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은 3대 경찰 가문 출신. 그에게 서울청 감찰계장 인호(박희순)가 은밀한 제안을 건넨다.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을 감시해 위법 증거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강윤은 범죄자를 잡는 데는 물불 가리지 않지만 거물 검거율 에이스다. 제안에 응한 민재는 강윤의 수사팀에 들어가, 그의 팀원이 돼 뒤를 캔다. 마약 조직 두목 동철(박명훈)에게 돈 가방을 받는 것까지 지켜보면서 강윤에 대한 민재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간다. 강윤의 목표는 접근불가 상위 1%만 상대한다는 국내 최대 마약상 영빈(권율)을 잡는 것이다.

강윤은 불법 명령도 따라야 하느냐는 민재의 물음에 “범인을 잡는 데에는 위법이 없다”고 즉답한다. 더욱이 그는 민재가 자신을 감시하는 끄나풀임을 알고 난 후에도 여전히 팀원으로 남겨둔다.

뒷조사를 이어가던 민재는 강윤이 동철에게 돈을 갚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날이 갈수록 그의 보고서에는 ‘무혐의’, ‘증거 없음’ 등의 내용이 늘어간다. 급기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민재는 ‘현장’을 겪어보면서 비로소 경찰이자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감독은 조진웅의 대사를 빌려 “경찰은 흑과 백 경계선 위에 서 있어야 해”라는 명제(규정)를 제시할 만큼 영민함을 보인다. 자신이 영화의 주도권을 잡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심리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법도 능숙하다. 억지를 부리지 않는 긴박감을 유지하면서 극의 흐름에 점점 빨려들게 만들고야 만다. 강윤과 인호, 양쪽 주장과 시각이 팽팽하다. 이 같은 균형을 쭈욱 끌어가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택해 지켜보면 된다. 조진웅을 선호한다면 강윤의 말에 수긍할 것이고, 최우식 팬이라면 인호의 지시를 수행하는 민재의 시선을 따라갈 듯싶다.
이제 우리 관객들은 지킬 것 다 지켜가며 집행하는 우리편보다도 한방에 해결하는 원샷원킬 히어로우형 주인공을 선호한다.

“허가는 갔다 와서 받자.”

조진웅의 대사가 멋져 보이는 이유다.

강윤조차 쉽게 잡을 수 없는 범죄자 영빈은 3년 전 강윤에게 체포됐지만 인맥과 배경을 동원해 빠져나왔다.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그를 12kg이나 살찌운 권율이 유들유들 연기해낸다.
동철 역은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 박명훈이 맡았다. 강윤과 거래를 통해 자신의 구역에서 영빈을 몰아내고 세력 확장을 노리는 동철 캐릭터를 특유의 ‘서늘한’ 눈빛으로 인상 깊게 그려냈다.

영빈이 마약제조용으로 설치한 커피 머신은 제작진이 준비한 소품이다. 상위 1% 범죄자와 걸맞은 특별함이 있어야 했는데 기존 커피머신이 이와 어울리지 않자, 미술팀이 디자인하고 특수소품팀이 실제 작동하게 만들었다.

민재가 갇힌 자동차 뒤 트렁크도 특수 제작한 세트다. 단지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트렁크가 아니라 차가 바닷속으로 빠져 덜컹거리는 효과, 트렁크 안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 등을 리얼하게 구현해낼 트렁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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