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소녀 무덤에 붉은 꽃 대신 '연대의 시집' 함께 올려요"

김경애 2022. 1. 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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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미얀마 민주화 시위][짬] 전북작가회의 김성철 시인
전북 지역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인들 이름으로 발간하는 시집의 편집장을 맡은 김성철 시인. 사진 전북작가회의 제공

“엄마, 가슴에 붉게 꽃이 폈네요/ 총부리에서 건넨 꽃이 환하게 폈어요/ 뜨거운 가슴이 사랑을 앓는 듯해요/(…)/ 막내가 가슴 꽃을 보고 울어요/ 붉은 꽃은 왜 눈물로 필까요/ 내가 부르는 자유와 평화와 푸름이/ 막내 눈물 덮을 때까지/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전북작가회의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염원하고 지지하고자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발간을 추진중인 시집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걷는사람)에 실린 김성철(49) 시인의 같은 제목 시 가운데 한 귀절이다.

편집장을 맡아 발간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6일 자신을 비롯해 작가회의 시인들이 지난해 전북지역 일간지 등에 자발적으로 창작해 발표한 미얀마 민주화 연대시 38편 가운데 20편을 추려서 수록했다고 소개했다.

“시집을 한국어·미얀마어·영어 3개 국어로 나란히 편집했어요. 수록할 작품의 선정과 번역을 미얀마 현지 작가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진행했고요. 특히 미얀마 사태에 미온적인 영어권 나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고자 영어로도 번역해 실었죠.”

‘미얀마 민주화 염원·시민투쟁 지지’
지난해 발표한 작가회의 시인들 작품
한국어·미얀마어·영어 ‘3개어’ 번역
미얀마 작가단체와 협의해 시집 발간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17일까지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전 주문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이 지난주 시집 발간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헌수. 이병초, 정동철, 김성숙, 박태건, 김성철 시인. 전북작가회의 제공

“미얀마 군부의 검열이 심해서 인터넷 연결이 자주 끊기는 등 미얀마 현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우리와 소통하는 작가 단체에서도 몇몇 시인이 행방불명됐다고 했어요. 그래서 현지인들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번역한 시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웠죠.”

시집에는 이병초 회장 등 전북작가회의 소속 시인 20명이 각 한 편씩 참여했다. 시집 한 권에 보통 60편 안팎의 작품을 담을 수 있으나, 3개 국어로 번역해 편집한 까닭이다. 여기에 김병용 소설가가 역사적 의미 등을 소개하는 산문 ‘고통 속에도 전진하는 미얀마와 한국의 역사’를 썼다. 시집 제목은 5~6개 후보 중에서 미얀마 시인들과 의논한 끝에 정했단다.

“미얀마에서는 조의를 표시하는 색깔이 붉은 색이라고 해요. 정부군의 총에 맞아 죽은 어린 소녀가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을 계속 해달라는 뜻으로 붉은 꽃 조문을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했어요.”

시집은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방식(https://link.tumblbug.com/ISp4IYYFkmb)으로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 최소 제작비만 빼고 판매수익금 전액을 미얀마 군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가족에게 보낼 계획이다. 지난해에도 전북작가회의는 회원들의 강의료·원고료·생활비 등을 모아 미얀마에 보냈다. 오는 17일까지 편딩을 마감한 뒤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시집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표지. 전북작가회의 제공

영문 번역 작업은 정동철 시인이 영어교사인 부인과 함께 재능기부를 해준 덕분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20여년 전 영국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처음 번역을 시작한 정 시인은 “시인으로 남고 싶어 그때 이후 거의 번역을 하지 않았는데 번역비로 쓰면 성금이 반토막 날 형편이라 자청해서 번역에 나섰다가 ‘개고생’을 했다며,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정 시인은 영어에는 ‘활활’ ‘아릿아릿’ 같은 의태어가 거의 없고, 우리나라 시인들이 의문문에서 물음표(?), 평서문에서 마침표(.), 감탄문에서 느낌표(!)를 쓰지 않으며, 주어는 있지만 술어는 없는 문장의 불완전성 등으로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박남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세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듯 보여도 (불교의 연기법인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서로에 연결된 것이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간절히 함께 연대하고 저항하며 가는 것이다. 시대의 촛불을 지키는, 살아 있는 시인 정신의 시집이 바로 여기 있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연대로 책이 만들어집니다. 누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요. 내장이 없이 사체로 온 시인이 있고, 군부와 반대에 섰다고 차로 밀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에게 총을 쏘는 현실입니다. 우리 전북작가회의 연대가 어떻고 어떤 의미고 이런 것들은 미얀마에서는 사치입니다. 미얀마를 보면 볼수록 광주가 보입니다. 보도블록을 깨고 총든 군대에게 돌로 맞선 우리가 보입니다. 3개 국어를 고집한 이유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서입니다. 그래서 편딩을 선택했습니다.”

김 시인은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편딩의 취지를 널리 알려달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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