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못하지만 좋아하는

이정규 2022. 1. 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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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정규 | 한겨레21부 취재2팀 기자

저 멀리 맞은편에서 주황색 형광 조끼를 입은 이들이 뛰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왼팔과 오른팔을 끈으로 묶은 채 나란히 달렸다. 어느새 내 옆을 쓱 지나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등에 ‘시각장애인 도우미’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와 함께 발을 맞춰 달리던 50대 남성의 표정에는 힘이 넘쳤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달리기를 멈춘 채 한참을 쳐다봤다.

궁금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왜 뛰려고 생각했을까. 넘어져서 다치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뛰는 기분은 대체 어떨까. 어느 뇌과학 연구를 보면 인간의 뇌는 실패나 실수를 해도 뭐라도 배운 게 있다면, 그 일을 값진 경험으로 인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냥 실패가 아니라 정답에 다가서는 과정으로서의 실패라면, 우리 뇌는 실패나 실수가 예상되는 상황을 피해가라고 명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래, 못하니까 해본다. 실패를 의도해본다. 실패의 확장을 통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새해를 시작하며 스스로 한 약속이다. 입사 면접 때는 솔직하게 밝히지 못했지만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기자 일을 잘하지 못할 거라고. 내향적이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면 쉽게 피곤해진다. 빈말로라도 글 잘 쓴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말은 두루뭉술 장황하게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못할 것 같아서,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더 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내 한계를 체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기자가 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저널리즘 업계에 들어선 이유도 비슷하다. 이곳의 미래가 다른 업계보다 밝아 보여서 선택한 건 아니었다. 언론사 입사 전부터 ‘미디어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를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다. 너나없이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이 점이 어쩌면 나처럼 기자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한테도 가능성이 열려 있을 거라 생각한 이유라면 이유다.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있으니까.

면접 때 ‘저는 잘 못할 것 같습니다’ 따위의 쓸데없는 말을 안 해서 운 좋게 기자가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신문사에 들어와보니 독자로부터는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미디어 비평지는 젊은 기자들이 망해가는 업계를 탈출하고 있다는 게으른 분석을 쏟아낸다. 이런저런 위기 속에서 다행히도 잘 못하는 일들을 하나둘 해내며 ‘냉소하지 않을 능력’을 키우고 있다. 타고난 능력이 없는 대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달까.

요즘 신문사들도 짐짓 의도된 실패를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어느 업종보다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는 신문사가 몇년째 디지털 혁신에 도전한다.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국외 언론에 견줘 국내 신문사가 시도한 혁신은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신문사는 주요 수입원으로 여전히 종이신문 광고에 기대고 있다. <한겨레>를 포함한 몇몇 언론은 후원제를 도입했지만 아직은 눈에 띄는 성과가 드물다. 이 모든 일은 애초에 잘 못하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실패하고 있다고 쉽게 냉소할 일이 아니다. 다 이럴 줄 알고 시작한 것 아닌가.

다들 떠나간다는 이 업계. 못하는 일을 하는 순간은 두렵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그래도 저널리즘을 더 이상적으로 만들어가려는 공간을 좋아하고, 그곳에서 부끄럽지 않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투하는 동료 기자가 보이면 등 뒤에서라도 애써 응원해본다. 매번 실패하고 실수하는 기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나 따뜻한 응원을 해주는 독자를 만나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못하는 일만큼 배울 일도 나아질 일도 많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실패해도 어떻게든 해내 무언가를 배우고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으니까. 다들 조금씩은 못하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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