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 사고 건물 증여하고..1880억 횡령범은 치밀했다

김정석,고보현,박홍주,박윤예 2022. 1. 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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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재구성
3년전 부동산 가족회사 설립
횡령한 돈으로 건물대출 상환
빼돌린 자금 회수 어렵게하고
해외도피 시도한 정황도 포착
자기 집에 숨어있다 체포되고
추적하기 쉬운 금괴 다량매입
이씨 윗선 지시로 한 것 주장
회삿돈 188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 모씨(45)가 6일 서울 강서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임플란트 제조사 오스템임플란트에서 1880억원을 횡령한 이 모씨가 잠적한 지 6일 만에 경찰에 검거되면서 그간 이씨의 행적과 범행 동기 등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씨는 횡령한 돈으로 부동산, 주식, 금 등 다양한 자산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했고 해외 도피를 시도한 정황도 다수 포착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오랜 기간 횡령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띌 가능성이 높은 자택에 숨어 있거나 추적하기 쉬운 금괴를 매입하는 등 이씨 행적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의문점도 이어지고 있다. 6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검거된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은신처에 숨겨놓은 금괴 일부를 압수했으며 252억원이 들어 있는 증권계좌도 동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추가로 숨겨져 있는 금괴가 있다고 보고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피의자 이씨가 검거됐지만 범행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씨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횡령을 저지르기 2년 전인 2019년 2월 아내, 여동생과 함께 부동산 관리회사 '에셈드'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그가 이번 범행을 오랫동안 계획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족 세 명이 운영하던 '에셈드'에서 같은 해 5월 아내 박 모씨가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했고, 횡령 이후 시점인 지난해 11월 30일 이씨도 임원직을 그만두며 현재 여동생만 사내이사로 남았다.

이 같은 이씨 부부의 사임은 부동산 자산을 보전하려는 '꼬리 자르기'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씨는 아내와 여동생 등에게 건물 3채를 증여하고 해당 건물의 근저당권을 말소시키는 데 수십억 원을 쓰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차명으로 넘어간 이씨의 부동산은 오스템임플란트가 곧바로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씨가 다각도로 분석해 치밀하게 빼돌리려고 한 정황이 포착되는 지점이다. 다만 오스템임플란트는 이씨 가족을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통해 증여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다. 이씨가 횡령한 이후 대출을 상환하고 이씨 가족에게 부동산을 증여한 정황이 확인되면 오스템임플란트는 민사소송으로 회수할 수 있다. 이씨는 횡령하기 5~6년 전부터 경기 파주시에 있는 건물 3채를 소유했다. 지난달 횡령한 돈으로 건물에 대한 대출을 모두 상환했고 아내와 여동생, 처제 부부에게 한 채씩 증여했다.

이 밖에도 이씨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6차례에 걸쳐 한국금거래소에서 1㎏짜리 금괴 851개를 구매한 배경에도 의혹이 쏠린다. 금괴 구입 시 신원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경찰 수사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를 통한 동선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괴 무게도 수백 ㎏에 달해 도주 과정에서 보관과 운반도 어렵다.

검사 출신인 김광삼 변호사는 "(이씨가) 해외로 도피하기 위해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을 통한 현금화도 어렵고 흔적을 없애야 하니 그렇게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과거 다른 횡령 사건을 봐도 우선 돈을 분산시킨 뒤 가족 명의로 빼돌리는 수법이 자주 쓰인다"고 덧붙였다.

오스템임플란트가 금괴를 압수하려면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 소송을 통해 회수해야 한다. 범죄수익은 관련 법령에 따라 몰수·추징이 가능하지만, 횡령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몰수·추징을 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이 나서서 회수하긴 어렵다. 민사 소송을 통한 회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스템임플란트는 1년 이상 거래정지될 가능성이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씨가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라며 "금괴가 가장 작은 부피로 살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주변 친지에게 보관을 맡기려고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6일 경찰 조사에서 윗선의 지시로 금괴를 매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임플란트 국내 1위이자 세계적인 회사에서 혼자 돈을 빼돌리기는 쉽지 않다"면서 "누군가 도와준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오스템임플란트는 입장문을 내고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로는 윗선 개입은 없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횡령 자금 추적과 금괴 압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오스템임플란트가 이씨에게서 횡령된 전액을 환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회사 측에서는 전체 횡령 금액 1880억원 가운데 1500억원가량을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 고보현 기자 / 박홍주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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