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 수는 없을까

한겨레 2022. 1. 6. 16: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세상읽기]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정부가 강력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정책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국민들께서 안심하셔도 된다”, “정부가 전적으로 부작용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 … 정부가 충분히 보상한다”고 밝혔다. 가족들이 백신을 접종했다. 어떤 가족은 접종 며칠 후 사망했고, 다른 가족은 가슴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져 병상에 누워 있다.

처음에는 정부가 신고 사례 대부분은 백신과 무관하다고,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 후 시간적 개연성은 있으나 ‘근거자료 불충분’으로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엔 최대 천만원의 의료비를 지원한다고 했다. 사망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 액수는 다시 3천만원으로 증액됐다. 그리고 사망에 대해서도 ‘근거자료 불충분’의 경우 5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신고 건수 기준으로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은 수십만건에 이르고 중증환자는 만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천명이 넘었다. 그런데 이 중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망은 2건, 위로금 지급 대상은 7건뿐이었다. 백신 접종 청소년 중 약 만명이 이상반응 신고를 했는데 정부의 대책은 이들에 대해 ‘성인보다 더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조금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백신을 맞고 세상을 떠나고 병상에 누워 있는 가족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껴야 하나. 시혜적으로 조금씩 바뀌는, 너무도 미흡한 정부의 조치를 접하며 무슨 생각이 들어야 하나. 그 슬픔과 고통, 억울함과 분노는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이건 연민이 아니다. 공감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다. 이건 상식이다.

특별한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백신 피해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수많은 사망자와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괴로워하는 가족들. 피해자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 심사 내용과 최소한의 정보 제공이나 충분한 의견 개진 기회조차 제때 주어지지 않는 총체적 부실로 다가오는 절차. 안정적인 치료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여러 참사에 대한 기시감이 몰려온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오버랩된다. 인과성 평가를 단계로 분류하고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부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방식도 이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대응 방식을 빼닮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해야만 조금씩 지원을 늘리는 방식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실상 백신 접종을 종용하고 백신 접종 없이는 불이익을 강요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의학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만 배보상을 할 수 있다는 접근은 백신 후유증 피해자들을 이중 삼중의 고통과 상처에 내모는 것이다. 공동선이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 피해를 보거나 그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충분한 대책 없이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전체주의와 다름없다. 얼마든지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불가피한 사회적 손실’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이 있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죽음, 상처, 피눈물이다.

제대로 된 추모나 기억을 얘기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선 후보들은 대부분 입증책임의 전환을 기초로 한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정부의 부작용 인과성 증명 책임 부담, 사망자 선보상 후정산, 중증환자 선치료 후보상 제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유사한 내용의 백신 국가책임제와 더불어 인과성을 따지지 않는 소아·청소년 백신 이상반응 국가 완전책임제를 제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코로나19 비상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대선 후보 ‘긴급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슷한 공약이 있을 때는 대선 후보들이 함께 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협력을 약속하고, 그들을 진정으로 함께 위로할 수는 없는 걸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야,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투성이가 돼야, 그리고 그 유가족들과 피해 가족들이 길거리를 뒹굴며 절규를 해야 조금씩 바뀌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대선 후보들이 선거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 손을 내미는, 피해자들 곁으로 다가가는 꿈을 꾼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