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실형은 9.4%뿐..'양형' 법조항에 '피해자 관점'은 없다

최윤아 2022. 1. 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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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디지털성범죄전문위 4차 권고안
"양형조건규정 형법51조 근본적 한계..법개정 필요"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피고인이 구치소에서 작성해 온 일기를 보면 피고인의 반성은 그 진정성이 느껴진다.… 피고인의 부모가 피고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으면서 재범 방지를 다짐하고 있고, 피고인이 한때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의 방황을 멈추고 학업에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다시는 범죄의 늪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2월 광주지법 제12형사부는 도박 자금을 마련하려 교제하던 여성과의 성관계 동영상 등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ㄱ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중학생, ㄱ씨는 고등학생이었다. 재판부는 ㄱ씨가 판매한 불법촬영물이 “널리 유포”되었다면서도 △피고인이 추가 유포 방지를 위해 협조했고 △초범인 데다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성범죄 가해자에게 선고되는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사례처럼 가해자가 ‘초범’이거나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재판에 넘겨진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가운데 81.3%는 1심에서 집행유예·벌금형·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9.4%에 그쳤다. 가해자 10명 중 8명은 실형을 면한 것이다. (‘검찰 사건 처분 통계 분석’)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전문위, 위원장 변영주)는 이처럼 성범죄 가해자에게 온정적 처벌이 이뤄지는 원인으로 양형에서의 ‘피해자 관점 부재’를 지목했다. 형법51조는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중심으로 형량을 정하는 것이다. 전문위는 6일 “해당 조항은 1953년 형법 시행 이래 68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다”며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된 양형으로 인한 논란과 불신을 해소하고 양형의 객관성과 형평성을 담보하기 위해 피해자 관점을 반영해 형법 51조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전문위는 구체적으로 개정안에 △피해자의 연령 △피해자에게 야기된 피해의 결과 및 정도 △피해 회복 여부 △피해자의 처벌 및 양형에 관한 의견 등의 요소를 추가로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양형기준’에는 가중사유로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 등 피해자 관점 요소가 일부 반영되어 있기는 하다. 전문위는 “형법상 이를 명문화하여” 피해자 관점의 반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양형기준’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가정폭력·스토킹 등 대표적인 젠더 폭력에 대한 양형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위는 “현행 형법 및 형사소송법은 과거 고문, 가혹 행위 등으로 침해됐던 피고인의 인권보호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져 피해자 인권보호 규정이 적다”며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해당 법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위는 또 양형에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확실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헌법(제27조5항)은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을 인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제294조2항)도 ‘피해자 등의 신청이 있으면 법원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하고, 이때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등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위는 ‘증인 신문 방식’에 한정해 피해자 진술권을 보장하는 해당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문위는 “증인 신문 방식은 피해자가 적극적·주도적으로 진술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서면 제출 등 증인 신문 방식 외 피해자 의견 진술권까지 법률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양형에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어야 피고인의 일방적 주장이 감경 사유로 반영되는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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