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2022. 1. 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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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중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피직스월드 제공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생으로 19세기에 태어난 아인슈타인(1879년생)이나 보어(1885년생), 에르빈 슈뢰딩거(1887년생)과 다르게 20세기의 사람이다. 독일 뷔츠부르크에서 태어난 하이젠베르크는 유년시절을 뮌헨에서 보냈고 뮌헨대에서 아놀드 조머펠트 교수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다(1923년). 하이젠베르크는 어릴 때부터 팔방미인으로 수학뿐만 아니라 외국어와 피아노에서도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의 학문여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역시 닐스 보어였다. 하이젠베르크는 1922년 괴팅겐대에서 보어의 양자이론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는 훗날 괴팅겐의 ‘보어 축제’로 불렸다. 보어는 당시 이미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다. 대형 강의실은 꽉 찼으며 유명한 교수들, 저명한 수학자들도 많았다. 21세의 하이젠베르크는 가장 어린 청중에 속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미 뮌헨에서 조머펠트와 함께 보어이론을 연구했으며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날려 보어를 당황시켰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에 흥미를 느껴 이후 산책길에 그를 초대했고 둘의 학문적 우정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산책은 하이젠베르크의 학문적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젠베르크는 뮌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괴팅겐대에서 막스 보른을 호스트로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교수 자격학위도 받았다. 1924년에는 보어의 초청으로 코펜하겐도 수차례 방문했다. 1925년 괴팅겐으로 돌아왔을 때는 꽃가루 알레르기를 심하게 알아서 요양휴가를 가기로 했다. 2주 여정으로 시작한 요양지는 북해의 작은 섬 헬골란트였다. 이 섬에 머무는 동안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에서 뉴턴 역학을 대체할 새로운 역학체계를 구상하게 된다. 

1934년 코펜하겐의 학회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닐스 보어(오른쪽)와 하이젠베르크. 위키피디아 제공

하이젠베르크에겐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전자의 궤도처럼 직접 관측할 수 없는 양을 배척하고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이나 세기 등 실험으로 관측할 수 있는 양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양자이론이 제아무리 기묘하더라도 에너지보존법칙을 위배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에서 관측가능한 물리량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 전통은 하이젠베르크로부터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19세기말에 풍미했던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나 마흐주의와도 연결된다. 마흐는 감각경험이나 직접적인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흐름은 아인슈타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에 흔히 등장하는 자와 시계를 이용한 측정은 마흐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현대물리학은 우리의 감각경험을 넘어서는 광속 근처나 원자 이하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마흐주의는 20세기의 정신과 그리 궁합이 잘 맞지는 않는 편이다. 마흐주의에 경도된 많은 과학자들은 19세기 내내 원자나 분자의 존재도 부정했다. 한때 마흐의 충실한 학생이라고까지 했던 아인슈타인도 결국엔 마흐주의와 결별했다.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것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거대한 표라고 할 수 있다. 이 표를 이용하면 하나의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방출하는 빛의 세기를 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도 보존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표를 이용한 계산이 기묘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곱하기의 순서를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는 보통의 숫자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프리드리히 훈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막스 보른 괴팅겐 1966년

하이젠베르크의 결과를 받아 든 괴팅겐의 보른도 처음에는 기묘한 수학규칙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얼마지 않아 그것이 곧 행렬의 곱셈임을 알아차렸다. 행렬이란 숫자를 직사각형으로 배열한 것을 말한다. 두 행렬사이에 곱셈이 성립하려면 조금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하고 그 계산법도 보통의 숫자들 곱셈보다는 좀 복잡하다. 두 행렬을 곱할 때에는 곱하는 순서가 아주 중요해서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거나 심지어 곱셈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 및 자신의 학생인 파스쿠알 요르단과 함께 행렬을 이용한 새로운 역학체계를 정리했다. 이 때문에 하이젠베르크가 확립한 역학체계를 행렬역학이라 부른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단독으로 저술한 논문 《운동학적 역학적 관계들에 대한 양자이론적 재해석》
은 양자역학을 정초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이 논문은 대단히 난해해서 스티븐 와인버그가 “마법 그 자체”라 언급할 정도였다.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단독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수상 이유의 첫 번째가 “양자역학을 정초한 공로(for the creation of quantum mechanics)”였다.

독일의 볼프강 파울리나 영국의 폴 디랙은 행렬역학에 열광했고, 즉시 이를 이용해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을 계산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가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물리학자들에게 오랜 세월 익숙했던 계산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수학과 계산규칙이 등장했다는 점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고전적인 방식으로 양자이론을 기술할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그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오스트리아의 에르빈 슈뢰딩거였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랙 등 20세기를 주름잡은 천재들이 20대에 눈부신 성과를 낸 반면 슈뢰딩거는 30대 중반까지도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했다. 

슈뢰딩거에게 큰 전환점을 준 것은 물질파를 주창한 드브로이의 학위논문이었다. 물질파에서 영감을 받은 슈뢰딩거는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할 새로운 파동방정식을 찾아 나섰다. 슈뢰딩거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한 것은 1925년 크리스마스 때였다. 슈뢰딩거는 스위스 아로사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는데 이때 동행한 사람은 부인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연인이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과학계에서도 바람둥이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그때 슈뢰딩거와 동행한 여자가 누구였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에르빈 슈뢰딩거. 슈뢰딩거 방정식을 비롯한 양자 역학에 대한 기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물질파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슈뢰딩거 방정식'을 창안했고 그것으로 1933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유명한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슈뢰딩거의 결과는 이듬해에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물리학자에게 대단히 익숙한 미분방정식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어떤 물리계의 총 에너지를 기술한다. 이 방정식의 풀이에 해당하는 함수를 파동함수라 부르며 보통 그리스문자 를 이용한다. 미분방정식은 오랜 세월 물리학자들이 풀어왔던 방정식이었기에 거부감도 덜했고 익숙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사이의 관계를 알지 못했으나 머지않아 두 체계가 동등함이 밝혀졌다. 지금은 양자역학의 문제를 풀 때 대부분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용한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중심으로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방식을 파동역학이라 부른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방정식을 발견한 공로로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단독수상이 아닌 공동수상이었다. 공동수상자는 영국의 폴 디랙이었다. 디랙 또한 자신의 이름이 붙은 디랙방정식을 1928년에 발표했는데 이는 특수상대성이론과 결합된 양자역학 방정식이었다. 이에 비하면 슈뢰딩거 방정식은 비상대론적 방정식이다. 하이젠베르크가 1925년 행렬역학을 발표해 1932년 노벨상을 받았고, 슈뢰딩거가 1926년에 파동역학을 발표해 1933년에 노벨상을 받은 사실이 흥미롭다. 한편 1928년 디랙방정식으로 1933년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디랙은 하이젠베르크보다 한 해 늦은 1902년에 태어났다.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이 20대 중반의 업적으로 31세에 노벨상을 받은 반면 슈뢰딩거는 39세의 업적으로 46세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불멸의 방정식을 발견해 과학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을 대표하는 방정식이고, 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므로 슈뢰딩거 방정식은 아인슈타인의 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방정식이라 할 수 있다. 슈뢰딩거가 이처럼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긴 했지만 정작 슈뢰딩거 본인은 양자역학 또는 양자이론 자체에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특히 슈뢰딩거가 드브로이의 물질파에 영감을 받아 파동방정식을 개발한 이유가 원자 속 전자를 파동으로 기술하기 위함이었다. 즉, 양자이론을 완전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로 일컬어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고 실험의 주인공이다. 위키미디어 제공

이는 괴팅겐대의 분위기와 전혀 달랐다. 보른이나 하이젠베르크는 고전역학을 완전히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역학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행렬역학이었다. 수학적으로는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 동등하다고 밝혀졌지만 애초에 각 역학체계를 탐색하던 철학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슈뢰딩거는 이후에도 이른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도 반대해 ‘슈뢰딩거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은 양자역학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코펜하겐 해석과 슈뢰딩거 고양이는 이후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결국 그 모든 사달의 출발점은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는 미분방정식의 풀이에 해당하는 파동함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슈뢰딩거에게 파동함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물리적 실체에 가까웠다. 예컨대 파동함수는 물질파로서의 전자라는 것이다. 한때 슈뢰딩거는 전자에 대한 파동함수가 전자의 전하밀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파동함수를 고전적인 의미의 파동으로 해석하기에는 어색한 면이 너무 많았다. 괴팅겐에서 고전역학과는 결별하고 완전히 다른 역학을 꿈꾸었던 보른은 1927년 파동함수에 대해 대단히 혁명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이로부터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영원히 결별하기 시작했고 다시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의 강을 만들어버렸다.

슈뢰딩거(왼쪽)와 하이젠베르크(오른쪽), 스웨덴 왕(가운데). 1933년 노벨상 수상식의 모습이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참고자료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짐 배것, 《퀀텀스토리》(박병철 옮김), 반니.
-(*)Heisenberg, W. (1925). "Über quantentheoretishe Umdeutung kinematisher und mechanischer Beziehungen". Zeitschrift für Physik. 33 (1): 879–893.
-스티븐 와인버그, 《최종이론의 꿈》(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32. NobelPrize.org. Nobel Prize Outreach AB 2021. Thu. 30 Dec 2021.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1932/summary/
-에른스트 페터 피셔, 《과학혁명의 지배자들》(이민수 옮김), 양문.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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