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건보' 논란.. 털은 해준다며, 살은 안해줄 건가? [박은주의 돌발]
비만, 발기부전, 미백 치료는 왜 안해주냐 물으면?
포퓰리즘 논란을 '농담전략'으로 돌파하기
대장동 화천대유 뉴스를 밤낮이고 보다가, 이마 주름이 진해졌다. 김정은 북한 미사일 뉴스를 보다가 미간 주름도 깊어졌다. 주름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커진다. 국민행복권 보장 차원에서 국가재정으로 보톡스를 놔달라. 최소한 의료보험을 적용해 만원 미만으로 보톡스를 맞게 해달라.
만일 기자가 이런 청원을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많은 분들이 기자에게 욕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다. ‘가게 장사가 안돼 스트레스를 받아 기미가 생겼다. 기미가 더 중하다. 나먼저 해달라’ ‘코로나로 마스크를 오래 써, 피부색이 얼룩덜룩하다. 화이트닝 시술 해달라’ ‘뱃살 때문에 결혼을 못한다. 미혼남녀에겐 비만주사 무료로 놔줘라’...혜택, 공짜 심리는 이렇게 증식한다.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가 만든 영상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가 화제다. 탈모인의 혐오단어라는 ‘뽑는다’ 대신 ‘심는다’를 쓴 재치있는 접근법이 화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탈모치료제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최종윤 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도 지난 4일 페이스북 글에서 “탈모는 공식적인 질병코드가 부여된 질병이지만 탈모 치료약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천만 탈모인들의 약값 부담을 덜어드림으로써 ‘소확행’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이 후보와 민주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친여인사들은 ‘저도 탈모인이에요’ 하면서 이 후보 지원에 나섰다. 민주당은 단합이 참 잘되는 당이다.
‘이재명은 심는다’고 해서 모발이식을 지원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치료약 의료보험 적용을 그것도 ‘고려’ 중이라는 거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심는다’ 표현했다. ‘과장술’이 일단 먹혔다. 받아들이는 쪽은 진지하다. 탈모인들이 일단 반색이라고 한다. 서울경제는 “의료보험이 적용될 경우 한달 약값은 약 4만5,000원서 1만원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머리털은 생명유지와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털 걱정이 사라지면 스트레스가 줄고 삶의 질도 올라간다. 생명과는 관련없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약을 ‘해피 드럭’ ‘라이프 스타일 드럭’ 이라 부른다. 발기부전 치료제, 다이어트약이 대표적이다.
포퓰리즘 논란의 이재명 후보가 이 ‘해피 드럭’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아젠다를 들고나온 것이다. ‘천만 탈모인의 숙원’같은 언어 유희는 포퓰리즘의 심각성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이게 가져 올 여파다.
‘남성 탈모’를 의료보험으로 지원하면, 비만, 발기부전 같은 증상에도 같은 혜택을 달라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털은 되는데, 살은 안돼’ 할 건가?
가뜩이나 위기라는 의료보험재정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일이다. 대통령 후보가 달콤한 말로 이런 포퓰리즘 공약을 던질 때, 이어지는 후폭풍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죽는 거 쓰고나 죽자, 하는 마음이라면 주로 남성인 탈모인만 편애하지 마시라. 미간주름과 팔자주름, 이마주름까지 ‘주름 3종세트’의 고난을 겪고 있는 기자와 같은 중년 여성에게는 보톡스주사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라. 뱃살이 부끄럽다는 이들에게는 지방제거술도 의료보험으로 해줘라. 숱만 있으면 뭐하나 새치가 걱정이라는 실버를 위해 염색약도 보험으로 해줘라. 자신감이 부족한 남성들에게는 발기부전치료제 의료보험 적용은 물론 강한 자신감을 더 장착할 수 있게 확대술도 해줘라. 확대의 기회가 필요한 여성들의 가슴도 잊지 마시라. 버는 데 비해 세금을 많이 낸다는 생각을 해온 중산층들이 다 병원으로 몰려갈 거다. 국가 재정, 건보 재정 따위는 그냥 공무원들이 책임지라고 하자.
정말 이럴 건가.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재명이 헌정 사상 최초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포퓰리즘 공약을 진짜 실현하면 나라가 거덜날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말이다. ‘이재명은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이 후보, 만일 당선된다면 ‘이재명도 못한다’ 리스트를 꼭 만들어 고백했으면 좋겠다. 말 뒤집는 게 어려운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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