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결벽증 배우자, 집이 너무 갑갑해요

한겨레 2022. 1. 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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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예쁜 외모에 끌려 결혼했지만
택배 못받고 재채기도 신경쓰여
서로 협의·조율하는 과정 필요해
게티이미지뱅크

Q. 몇달 전 결혼한 30대 회사원 새신랑입니다. 아내는 프리랜서입니다. 솔직히 예뻐서 결혼했어요. 깔끔하고요. 처음엔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가족들이 택배요정이라고 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뒤에는 택배를 집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나 병균이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절대 상자를 집 안으로 갖고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아내는 대중교통을 탈 때도 비닐장갑을 낍니다. 저는 집 현관문을 잡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 들어와선 곧바로 화장실에서 손발을 씻고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세탁할 때도 아내는 제 옷을 따로 빱니다. 자기 옷과 섞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기분 묘합니다.

제가 재채기를 하면 비말이 튄다며 아무리 추워도 창문을 다 엽니다. 방귀는 죽을 때까지 못 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사람을 신혼집에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처가나 우리집 가족들도요. 아내는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것 자체가 너무 싫다고 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결벽증 치료를 받아보면 어떠냐고 했더니 장인어른도 결벽증이 있지만 별문제가 없었다며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저는 집이 너무 답답합니다. 회사에 오면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데, 회사에서도 재택을 권장하고 있어서 난감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갑갑한 남자

A. 저는 집에 들어오면 조명 스위치조차 만지지 않고 (보통 팔꿈치로 켭니다) 곧장 욕실로 직행해 손을 닦곤 하는데요, 집에 온 손님이 손을 닦기도 전에 집의 이곳저곳을 만지면 저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해요. 만약 누군가와 함께 사는데 매번 이것을 말해주어야 한다면, 그 사람의 귀가 시간마다 저는 결과적으로 어떤 말을 하게 되겠죠. 제 입장에선 마땅히 해야만 하는 말이지만, 상대방에게는 괴로운 잔소리로 들릴지 모를 어떤 말일 것이고요.

아내분은 청결에 대해 보통의 경우보다 사실상 강박을 갖고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이것이 불편하거나 괴롭다고 인지하지 않는 이상 치료를 받을 의지를 내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청결에 대해서 개념이 없는 당신이 노력하면 될 문제인데, 왜 내가 치료를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고요.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해도,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을 잘못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이미 불쾌했을 수 있지요. 본인이 이미 불편함을 느꼈어도, 치료를 받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기분이 나빠 거절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지금 확실한 것은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 이런 식으로 함께 편안하게 살기란 어렵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조율을 해야죠. 재택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둘째, 아내가 유난 떤다, 정말 갑갑해 죽겠다고 아내의 행동이 교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신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은 없이,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만 있으니까요.

일단 아내의 행동들을 일단 세 가지로 분류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본인 스스로 지키는 청결의 규칙, 남편인 당신에게 요구하는 규칙, 아내도 남편도 아닌 주변 상황이나 가족들에게 요구하는 규칙들 이렇게 세 가지로 말입니다. 그 규칙들을 쭉 적어 보시되, 아내가 스스로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기로 해보세요. 본인이 비닐장갑을 끼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그대로 두는 것이죠. 세탁을 따로 하는 것도 사실상 당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 전혀 아닌데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문제가 되는 건 사람을 신혼집에 초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 정도는 내가 완전히 이해하고 양보할 테니 당신도 이런 부분은 조금만 양보해 달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협의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코로나 시국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 있기에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일이 많이 부담스러워진 것은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집에 오는 것이 싫은 까닭이, 단지 집이 더럽혀지는 기분 때문인지 혹시 다른 까닭이 있는지도 차분히 대화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상대가 예쁘고 깔끔해서 결혼했는데 속았다고 느끼신다면, 아내분도 당신에게 비슷한 생각 그리고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 있겠지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며 어디까지 서로 조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요? 청결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결국 이것은 ‘조율’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요?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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