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육 상품화 '청신호'..아기 소 희생 없는 '무혈청 배양액' 잇단 개발

곽노필 2022. 1. 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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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덜란드·이스라엘 이어 한국도 성공
소태아혈청 윤리·가격 문제 해결 돌파구
셀미트 "기술 선도국과 경쟁 발판 마련"
한국의 셀미트가 개발한 배양육 독도새우 시제품. 셀미트 제공

기후변화 시대의 유망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배양육이다. 가축을 사육하지 않고 근육과 지방 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얻는 기술이다. 동물을 사육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덜하고 토지와 물 등의 자연 자원도 덜 쓰는 친환경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독립 연구기관 ‘시이 델프트’(CE Delft) 분석에 따르면 배양육 쇠고기의 경우, 사육 쇠고기보다 온실가스는 92%, 대기 오염은 93%, 토지는 95%, 물은 78%로 줄일 수 있다. 세포를 배양해 얻는 고기는 도살과 같은 동물 윤리 문제, 세균 오염이나 항생제 독성 등의 위생·건강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현재 전 세계에서 70여개사가 블루오션의 희망을 안고 배양육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그러나 배양육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벽이 하나 있다. 세포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배양액 문제다.

배양육 업계에서는 세포를 성장시키는 배양액으로 영양이 풍부한 소태아혈청(FBS)을 주로 쓴다. 그러나 소태아혈청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윤리, 가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소태아 혈청을 채취하기 위한 소를 따로 사육해야 한다. 전 세계에 75만~150만마리의 소가 태아혈청 채취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를 도축한 뒤에는 태아를 꺼내 혈청을 추출해야 한다. 생산량이 적다 보니 가격도 높다. 소태아혈청 비용은 배양육 전체 생산비의 50~90%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최근 이 문제 해결의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소태아혈청을 사용하지 않는 무혈청 배양액 개발 성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출발이 늦은 한국에서도 젊은 과학도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무혈청 배양액 개발과 이를 이용한 배양육 시제품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무혈청 배양액은 제조 비용이 소태아혈청의 수십분의 1~수백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품질만 확보된다면 앞으로 배양육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셀미트가 개발한 무혈청 배양액. 셀미트 제공

셀미트, 배양육 독도새우 시제품 개발

한국의 셀미트는 지난해 말 소태아혈청 대신 각종 영양 성분과 성장효소를 첨가제로 사용한 무혈청 배양액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박길준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무혈청 배양액이 기존 배양액보다 세포를 최대 250%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분야의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업체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특히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배양육 종류별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최적의 배양액 조성을 찾아냈다고 덧붙였다.

셀미트는 자체 개발한 무혈청 배양액과 지지체(배양육의 모양을 만들어주는 구조체) 기술을 이용해 독도새우 배양육 시제품도 만들었다. 이 회사의 첫 시제품인 배양육 새우는 독도새우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했다.

배양육 독도새우로 만든 새우튀김. 셀미트 제공

내년엔 하루 50kg 생산…랍스터·닭고기도 80% 진척

김희정 셀미트 이사는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연 시식행사에서 실제 새우와 구별하기 어려운 질감과 향,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생산 능력은 최대 하루 5kg이며, 내년까지 하루 50kg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김 이사는 “랍스터와 닭고기 시제품 개발 작업도 80% 정도 진행된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 유학생 출신 과학도 4명이 2019년 창업한 이 회사는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5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씨위드가 개발한 배양육 한우 시제품. 씨위드 제공

씨위드, 스피룰리나 배양액으로 배양육 한우 개발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 출신 학생들이 2019년 창업한 씨위드는 해조류에 기반한 배양육을 자체 연구하던 중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개발한 무혈청 배양액 기술을 이전받았다. 이 배양액은 해양미세조류인 스피룰리나 추출물이 주성분이다. 해양과학기술원은 “스피룰리나 배양액은 소태아혈청에 비해 아미노산과 무기질 함유량이 많고, 동물 혈청에서 있을 수 있는 오염 성분이나 독성미생물 걱정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희재 대표는 “소태아혈청이 리터당 150만원에 육박하는 반면 미세조류배양액은 리터당 2~3천원으로 매우 저렴해 배양육 상용화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소태아혈청의 효능을 뛰어넘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려우나 현재 세포의 동등한 성장을 가정한 상태에서 소태아혈청을 80~90% 대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씨위드는 현재 이 배양액을 이용해, 한우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배양육 쇠고기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비공개 시식 행사도 열었다. 지금까지 7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업사이드푸드의 배양육 치킨 핫도그. 업사이드푸드 제공

미국선 배양육 공장 완공…식품 승인 대기중

미국 캘리포니아의 업사이드푸드(옛 멤피스미트)도 지난해 말 동물성 성분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배양액(ACF)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업사이드푸드는 이를 이용한 치킨 너겟과 핫도그 사진도 공개했다.

이 회사의 수석부사장 에릭 슐츠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에 개발한 배양액은 아미노산, 지질, 설탕, 비타민, 미네랄, 물과 세포 성장을 돕는 기타 영양소 등 전통적인 동물 성분 배양액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이 회사를 창업한 우마 발레티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첫날부터 동물 성분이 없는 세포 먹이를 개발하는 것이 지구와 인류에게 더 좋은 고기를 제공한다는 우리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6년 배양육 미트볼, 2017년 배양육 치킨을 개발해 선보인 바 있다.

업사이드푸드는 지난해 11월 연간 5만파운드(22.7톤)의 생산 능력을 갖춘 배양육 공장을 완공하고, 현재 미 식품 당국의 배양육 시판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기존 배양액의 1.5% 수준까지 비용 하락

세계 최초의 배양육 개발자들이 설립한 네덜란드의 모사미트는 이미 2019년 말 동물 성분이 없는 무혈청 배양액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이후에도 잇단 기술 개선을 통해 배양액 비용을 기존의 65분의1(지방세포)~88분의1(근육세포) 수준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모사미트는 2013년 세계 처음으로 배양육 햄버거 시식회를 연 네덜란드의 마크 포스트 교수(마스트리흐트대)가 2016년 설립한 회사다.

이스라엘 퓨처미트의 닭가슴살 배양육. 퓨처미트 제공

2018년 출범한 이스라엘의 퓨처미트 테크놀로지 역시 식물성 성분의 배양액을 개발해 배양육 치킨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닭가슴살 생산비를 1파운드당 7.7달러(또는 1조각 1.7달러)까지 낮췄다. 이는 미국의 일반 사육 닭고기 값의 두배가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1~2년 안에 일반 닭고기와 비슷한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업사이드푸드의 캘리포니아 배양육 공장. 업사이드푸드 제공

배양육이 축산 고기와 경쟁할 날은?

그러나 대체육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배양육 생산 기술과 시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이후에도 당국의 식품 승인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배양육은 새로운 유형의 식품이어서 용어에 대한 정의, 원료 및 생산 기준 등이 아직 확립돼 있지 않다. 한국뿐 아니라 이 분야 선도국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배양육 시판 승인 사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잇저스트가 2020년 12월 싱가포르에서 받은 것이 유일하다.

연구기관 ‘시이 델프트’는 지난해 초 5개 업체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배양육이 기존 축산 고기와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값이 비싸고 동물윤리 문제를 안고 있는 배양액 문제가 해결될 경우 그 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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