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전국시대]③ 법 테두리 밖 라이더들..실명·소득 '깜깜이' 논란
소득 신고 하랬더니 배달료 10% 인상..탈루 온상 됐다
계약서 작성도 안하는 업체들.. "지자체가 감독 나서야"
경기도의 한 구청 공무원 A씨는 평일과 주말 시간을 쪼개 배달 라이더를 부업으로 하고 있다. 지방공무원의 겸업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가능하지만 따로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배달대행 업체와 서면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과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수수료를 현금으로 받기 때문에 직장에 들킬 우려가 거의 없다. 이렇게 한달에 버는 돈은 공무원 월급의 70%에 달한다.
배달대행업계가 추산하는 배달 라이더 수는 10만명에 이르지만, 이들 중 실명으로 계약서를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서면 계약을 하지 않거나 차명 계약이 만연해서다. 수수료 지급 주기도 제각각이고 현금으로 받아가는 경우도 있어 소득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정부는 라이더가 전국에 몇명 있고 얼마나 버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배달 라이더는 현행법 테두리 밖에 있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속하지 않고 사업주의 관리 감독을 강하게 받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분류된다. 기존 특고인 보험설계사, 방문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등은 일찍이 사회안전망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했고 실태조사를 토대로 사회보험 가입이 이뤄졌다.
반면 배달 라이더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숫자가 급증한 후에야 정부와 지자체가 집중 감시 대상에 포함하고 표준계약서 도입을 권고하는 수준이다. 실태조사 없이 올해부터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 되면서 배달료가 급등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소득 신고 하랬더니 배달료 10% 인상… 탈루 온상 된 배달업
서울 구로구에서 배달 전문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달 중순 배달대행업체로부터 “1월 1일부터 배달대행료를 3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해부터 라이더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 되면서, 배달대행업체가 라이더에게 지급한 소득을 투명하게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부가가치세 10%를 안냈는데, 이제는 내야 하므로 식당에게 받는 배달대행료를 올린다는 얘기다.
식당은 배달 앱 등장 전까지 배달원을 직고용했지만 이제는 배달대행업체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외주를 준다. 매장 전화나 배민, 요기요 등 앱으로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라이더를 공급 받는다. 이때 배달대행업체는 주문을 확인하고 라이더를 보내는 과정에 모바일 프로그램을 활용하는데, 이걸 공급하는 업체가 바로고, 생각대로, 메쉬코리아 같은 회사들이다.
1건의 음식 배달 주문에 배민, 식당, 배달대행업체, 프로그램 공급사 4자가 개입한다. 배달 플랫폼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유럽 등에 없는 K배달업 만의 분업이 원청·하청·재하청 구조로 귀결됐다.
식당이 내는 배달대행료는 ▲배달 라이더 ▲배달대행업체 ▲배달대행 프로그램 제공사 3개 주체가 나눠 갖는다. 4500원이라면 10% 정도를 배달대행업체가 갖고, 5~6%는 배달대행 플랫폼이, 나머지는 배달 라이더가 가진다.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는 직접 고용한 라이더가 실행한 주문이 아니면 배달대행료를 떼 가지 않는다. 식당에 앱 사용을 댓가로 받는 중개 수수료가 수익원이다. 이들이 직고용하는 라이더는 전체의 10% 미만이고, 대부분 외주를 준다.
자영업자들은 지출 증빙을 위해 배달대행업체로부터 세금계산서를 발급 받아야 하는데, 일부 업체가 ‘라이더들이 기피한다’며 거부하고 현금 거래를 요구하는 관행이 비일비재했다.
배달 라이더 중에서 일반 직장에 취업하기 힘든 신용불량자나 기초생활수급자, 겸업이 금지된 직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교사 등이 수익 노출을 꺼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순간 다른 업체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금 거래된 소득은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은 채 지하경제로 남는다.
배달대행업체와 실명으로 표준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라이더들도 세금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라이더는 자신이 번 배달료 안에서 오토바이 유지·관리비, 유상운송(돈을 받고 물건, 음식을 배달)용 이륜차 보험료를 직접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관계자는 “배민, 쿠팡이츠의 단건배달 경쟁으로 라이더 공급 대비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달대행업체들이 자기들은 ‘을(乙)’이라고 한다”며 “배달 잘하는 라이더 1명이 아쉬운데, 세금까지 뗀다고 하면 이탈이 심해질 거라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 허가제 아닌 배달대행업 전국에 난립…라이더에 갑질
배달대행업체는 배달 라이더의 구인난이 심각해 갑을 관계가 역전됐다고 하지만 현장 조사 결과는 달랐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가 2020년 6~8월 서울, 광주 대전 등 전국 1628명 배달 라이더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50.6%만 배달대행업체와 명시적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고 49.4%는 구두계약을 했거나 계약 여부를 모른다고 했다. 응답자 53.2%는 배달대행업체가 계약 내용을 정하고 그대로 따른다고 답했다.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그 일체에 대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건당 전산수수료는 업무 여건에 따라 100∼500원을 차감한다.’
‘해당업체와의 계약이 끝난 후 3년 간 경업(競業·경쟁 업종 영위)을 할 수 없다.’
작년 7월 서울시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경기도 등이 서울·경기 지역 배달대행업체 163개를 대상으로 계약 실태를 점검한 결과 계약서에서 이런 내용이 발견됐다. 조사 대상 업체 대다수의 계약서에선 ▲배달료를 기재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변경하고 ▲배달 라이더에게 불리한 배상 책임 규정을 넣거나 ▲계약 해지 후 경업을 금지하는 등 불공정한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
폐업 및 주소불명 업체(22개)를 제외한 총 141개 중 124개가 표준계약서를 쓰거나 계약서의 불공정 조항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표준계약서는 2020년 10월 민간 주도의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만든 것으로 차별 금지, 산재보험 가입 등 배달 라이더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17개 업체는 표준계약서 작성, 불공정 약관 시정 모두 거부했다. 정부 입장에선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배달 라이더가 공정위에 업체를 신고해야 면밀한 조사가 가능한데, 을(乙)의 지위인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가 조사에 나선 업체들 163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63개는 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배달대행 플랫폼 로지올(생각대로 운영사), 바로고, 메쉬코리아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서울, 경기 지역 배달대행업체 가운데 라이더가 50인 이상인 업체들만 대상으로 한 것이다.
라이더가 50인 미만인 업체까지 합하면 700개에 이른다. 이들 업체 이외에도 수도권에서 배달대행 프로그램 공급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 늘고 있고 비(非)수도권의 경우 영세한 업체들이 더욱 많다.
조규준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배달대행업 설립이 자유롭다보니 지역에선 무분별하게 난립하면서 수수료는 낮아지고 근로여건은 열악해지는 등 바닥을 향한 경주가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를 만들어 배달 단가가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기본임금을 설정하거나, 라이더의 숙련도를 인정해줘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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