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은 성폭력 피해자의 방패? 뜬구름 잡는 헌재, 무책임한 법무부

최윤아 2022. 1.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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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 빈틈을 비추다][젠더폭력 빈틈을 비추다] 6회
성폭력피해 지원책, 10년 맞지만 한계 뚜렷
피해자 도움은커녕 2차피해·가해자 두둔도
변호사들도 "낮은 보수 등 사명감 바닥" 토로
법무부의 점검 공백.. 퇴출 변호사는 단 한 명
게티이미지뱅크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 검사는 국선변호사를 선정하여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는 19살 미만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30조6항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동안 미성년 피해자에게 해바라기센터나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녹화하고, 이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는 일이 허용됐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는 미성년 피해자도 직접 법정에 나가 진술하고 피고 쪽 반대신문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법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작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직접 경험하거나 곁에서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오는 3월16일이면 시행 10년을 맞지만, 제도가 성숙하기는커녕 갈수록 그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국선변호사 양쪽은 모두 그 원인으로 법무부의 ‘공백’을 꼽았다.

연락 두절 다반사,“봉사활동”이라며 피해자 요청 거절도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범죄·아동학대 피해자 등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국가가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비용을 지급하는 제도다.

대표적인 피해자 조력 제도이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평가는 처참한 수준이다. 연락조차 잘 닿지 않고, 법률 조력이 미흡하며, 성인지 감수성도 낮아 변호사로부터 외려 2차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가 지난해 7월23일부터 30일까지 전성협 소속 40개 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이용 경험 조사를 진행했다. 총 221건 답변 가운데 98건(44%)이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했다. △연락을 받지 않는다 △“나는 봉사활동 하는 것이다” “곧 그만둔다”며 피해자의 요청을 차단한다 △사건 진행과 재판 결과 등에 대한 정보를 피해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등의 평가들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등을 방문해야 할 때 절실히 필요로하는 ‘진술동행’마저 거부당했다는 경험도 27건(12%) 있었다. ‘너무 멀다’ ‘일정이 안 된다’ 등의 이유였다. 심지어 진술동행 제도 자체를 안내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 대한 지적도 23건(10%) 있었다. “가해자가 유망한 사람이다” “가해자가 자살할 수 있다”며 가해자 입장을 두둔하거나 “왜 (당시에) 저항하지 않았나” “거짓말하면 무고가 된다” 등 피해자를 위협하고 위축시키는 변호사도 있었다. 김혜란 전성협 공동대표는 <한겨레>에 “이 제도의 부실 운영으로 인한 여파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성 없는 보수 체계… ‘계속하겠다’는 변호사 27.3%뿐

만족도가 저조한 건 피해자 국선변호사 쪽도 마찬가지다. 보수는 적고, 권한 보장은 없다. 일을 지속할수록 사명감이 바닥나는 구조라고 토로한다.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 법률사무소)가 지난해 11월26일부터 12월1일까지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한 적 있는 변호사 22명에게 물었더니(중복 응답) 응답자 전원이 “현실에 맞지 않는 보수 체계”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감정 노동의 어려움(16명), 명확하지 않은 업무 범위(15명)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 책정된 피해자 국선변호사 보수는 △수사 참여(대면 상담, 의견서 제출, 조사 참여) 40만원 △공판 참여 20만원 △기타 10만원이다. 행위별로 보수를 책정해 각 조력 행위마다 법무부에 청구해야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12년부터 국선변호사로 일해온 정수경 변호사(법무법인 지혜로)는 <한겨레>에 “단순히 보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없게 책정되어 있다”며 “피해자에 따라서는 코로나19로 전화나 이메일 상담을 선호하는데, 현 보수 체계에서는 ‘대면’하지 않으면 보수를 전혀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입장에서 피해자 조력은 가해자보다 더 많은 공력이 필요한데, 이를 반영하지 않은 보수 체계가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그만두게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2018년과 지난해 10월 두 차례 보수 개편이 있었고 그때마다 처우가 악화해 노련한 변호사들이 상당수 그만뒀다”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가 취합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2명 가운데 ‘앞으로도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일하겠다’는 사람은 6명(27.3%)에 그쳤다. 나머지는 ‘없다(36.4%)’ ‘잘 모르겠다’(31.8%)였다.

도입 뒤 8년간 실태조사 0건, 퇴출 변호사는 1명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이탈로 인한 피해 또한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지금도 서울 외 지역은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조사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국선변호사로 남더라도 사기 저하는 피해자가 받는 법률 서비스의 악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2차 피해를 주거나, 불성실한 변호사를 주기적으로 퇴출할 시스템도 없다. 제도 도입 뒤 10년이 되어가지만 퇴출 변호사는 지난해 1명뿐이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의 부실 운영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법무부 차원의 실태조사는 제도 도입 초기인 2012년 한국성폭력상담소,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용역 이후 8년 가까이 ‘공백’ 상태였다. 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 제22조는 “법무부 장관은 국선변호사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으나, 말 그대로 법무부 장관 ‘재량’이니 주기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2월 법사위 업무보고에서 송기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지적이 나오자, 법무부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의뢰해 한 차례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해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달 3일 전성협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합심해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제도 이용자인 피해자 쪽(지원단체)과 피해자 국선변호사 사이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10년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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