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모(毛)퓰리즘’

김홍수 논설위원 2022. 1. 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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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위인 중엔 탈모의 고통에 시달린 이가 적지 않다. 로마 장군 카이사르는 휑한 정수리를 감추려 평생 월계관을 쓰고 다녔다. 40대부터 탈모에 시달린 청나라 서태후는 죽을 때까지 가발을 썼다. 대머리였던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감추는 대신 “세월이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주었다”고 자위했다. 서양 의학의 시조 히포크라테스는 탈모약으로 비둘기 똥을 처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바르면서 “거세된 남성 중엔 대머리가 없다”는 점을 주목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2300년 뒤 현대 생명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남성호르몬 대사물질(DHT)을 억제하면 탈모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개발된 탈모 치료제가 ‘프로페시아’다. DHT를 줄이는 성분, 피나스테리드가 1㎎씩 들어 있다. 문제는 매일 한 알씩 평생 먹어야 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고, 한 알당 1500~2000원으로 약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1000만명에 달한다는 탈모인들이 그냥 있을 리 없다. 한 알에 100원꼴인 인도산 복제약을 해외 직구로 구입하거나, 피나스테리드가 5㎎씩 들어 있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5등분해 먹는 ‘꼼수’를 찾아냈다. 전립선 치료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한 달 치 약을 1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비용을 정품 약의 25분의 1 로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립선 치료제의 탈모약 전용은 불법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탈모인의 이런 불편에 주목했다. 이 후보가 “탈모약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넣자”고 제안하자 탈모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열띤 반응에 고무된 이 후보는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건강보험은 말 그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험 제도다. 외모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건강과 직접 관련 없는 약제는 비급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이 기준을 허물려 한다. 현재 건보 재정은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위태롭다. ‘문재인 케어’ 탓에 건강보험 적립금이 3년 뒤엔 바닥난다고 한다. 어려운 건보 재정 때문에 항암제같이 생명과 직결되는 약도 비급여가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표 얻자고 탈모약도 지원하자고 한다. ‘모(毛)퓰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이 후보가 돈 주는 아이디어를 내 점수를 따고 좋아할 때마다 나라와 사회의 바탕엔 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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