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코리안 디저트’를 아십니까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 1.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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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강정 아니라 고기 먹은 뒤 먹는 볶음밥·냉면이 ‘한국식 디저트’
미국인에게 갈비 먹은 후 “식사는요?” 묻자 “또 먹으라고요?” 갸우뚱
우리도 밥이 부식으로 밀려… 내 아이는 “한국인은 밥심” 이해 못해

‘코리안 디저트(Korean dessert)’가 해외에서 화제다. 약과, 다식, 강정, 과줄 같은 전통 한과(韓菓)가 아니다. 외국 사람들이 말하는 코리안 디저트는 다름 아닌 볶음밥이다. 삼겹살이건 꽃등심이건 오리고기건, 무엇을 굽건 마지막에는 밥을 볶는다는 거다. 범위를 더 넓히면 볶음밥뿐 아니라 냉면, 잔치국수,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고기를 먹은 뒤에 먹는 탄수화물류 음식이 ‘한국식 디저트’란다.

한국인에겐 익숙하고 당연하지만, 외국인에게 고기를 먹은 뒤 다시 식사한다는 건 너무나 생소한 일인 모양이다. 10여 년 전 미국 바비큐 전문가가 한국에 왔다. ‘코리안 바비큐’가 궁금하대서 갈빗집에서 생갈비와 양념갈비를 구우며 인터뷰했다. 주문한 고기를 다 먹자 종업원이 불판을 치우며 “식사는 뭘로 하시겠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이 한 말을 그대로 번역해 말해주니 그가 깜짝 놀랐다. “식사를 또 하라고요? 여태 고기를 실컷 먹었는데, 그걸로 모자랄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한국 사람은 다 이렇게 먹나요? 엄청난 대식가들이군요!”

/일러스트=이철원

한국인의 식생활은 탄수화물을 기본으로 해왔다. 밥은 본래 쌀로 대표되는 곡식에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을 말한다. 하지만 밥은 이 원뜻을 넘어 끼니 또는 음식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더 널리 쓰인다. 그러니 아무리 고기를 많이 먹어도 볶음밥이나 찌개를 곁들인 밥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한 끼가 아니다. 밥이 없으면 국수라도 먹어야 했다.

서양 식생활의 기본은 단백질이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주식(主食)은 고기다. 빵은 고기에 곁들이는 부식(副食)에 불과하다. 서양에서도 옛날에는 빵이 주식이었다. 프랑스 음식 역사·사회학자 알랭 드루아르(Drouard)는 ‘미각의 역사’에서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파리의 노동자들이 식품 구입에 쓰는 총지출은 대략 수입의 절반이었다. 주식은 항상 빵이었으며 여기에 수프가 나왔다”며 “(심지어) 부유한 농부도 고기보다 빵에 2배나 많은 돈을 썼으며, 이는 연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했다”고 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프랑스를 비롯, 서구 가정의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 동시에 과학기술 발전으로 농업·축산·어업 분야 생산성이 혁신적으로 높아지면서 식품 가격이 떨어졌다. 부자들이나 먹을 수 있었던 고기 소비가 점점 늘어나면서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빵은 보조적인 역할로 밀려났다.

20세기 중·후반 벌어진 식생활 변화가 21세기 초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최근 발간한 ‘2022 푸드 트렌드’에 ‘3색(色) 단백’이란 부제를 붙였다. 푸드비즈니스랩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수급표를 분석, 1인 기준 일(日)평균 에너지 공급량은 1980년 2485㎉에서 3098㎉로 증가했는데 그중 탄수화물의 비율은 75%에서 50.7%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지방은 13.1%에서 34.6%로, 단백질은 11.8%에서 14.7%로 증가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이러한 결과는 탄수화물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던 추세에서 단백질로 공급원을 대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육류 소비형태 변화와 대응 과제’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지난 20년간 31.9㎏에서 54.3㎏으로 약 71% 증가했다.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57.7㎏·2020년 기준)의 94%에 달하는 수준이다. 고기를 쌀만큼 먹는다는 것이다. 전국한우협회 한우정책연구소는 “2000년 이후 매년 육류 소비는 1.12㎏씩 늘어나는 반면 쌀은 1.8㎏씩 감소하고 있어 2021년에는 육류와 쌀 소비가 거의 비슷해지며 2022년에는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보다 2.4㎏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양 사람들이 식사 마무리로 달달한 후식을 먹는 건 인간의 뇌가 당분을 섭취했다고 인지해야 비로소 만족하기 때문이다. 뇌의 만족감을 다른 말로 하면 포만감이다. 그동안 쌀밥은 한국인 식생활의 중심을 차지했지만, 지금처럼 차츰 부식으로 밀리다간 외국 사람들이 말하듯 후식으로 그 위상이 격하되지 않을까.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내 아들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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