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명분·실리 잃은 ‘녹색 에너지’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1일(현지 시각) 27개 회원국에 원자력·천연가스를 친환경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EU택소노미(taxonomy·분류체계) 초안을 송부했다. 하루 전 우리 환경부는 K택소노미를 발표하며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블루수소(LNG 기반 수소)는 녹색에 포함했고, 원전은 제외했다.
현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를 감안할 때 원전이 빠진 건 예측 가능했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공기업이 K택소노미에 ‘원전 신설’ 또는 ‘원전 포함 여부 전문가 검토 추진’을 반영해달라며 14쪽짜리 의견서를 환경부에 제출했지만 묵살됐다. 녹색 금융 투자에 척도가 되는 K택소노미에 원전이 빠지면서 국내 원전 수출 경쟁력이나 원전 산업 생태계 구축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환경부가 “LNG·블루수소를 K택소노미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탄소중립위원회 의견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대폭 늘리며 “탄소 중립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자평까지 한 마당에 석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70%가량을 뿜어내는 LNG를 ‘녹색’으로 분류하는 것은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탄중위는 환경부에 “EU·중국·일본 등도 LNG나 블루수소를 ‘녹색’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LNG를 녹색으로 분류하면 ‘그린워싱 방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원전 미포함, LNG 포함’이라는 K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상 2034년까지 석탄 발전 폐지 부분을 LNG로 대체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석탄의 빈자리로 생길 전력 수급 불안을 해결할 확실한 ‘보험’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원전에 대해선 “원전 포함 여부는 EU 등 국제 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속 검토하겠다”면서도 ‘사회적 합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환경부 입장에선 탈원전에 맞장구치면서도 K택소노미가 향후 에너지 불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결과 ‘원전 미포함, LNG 포함’이라는 희한한 결론이 도출됐다. 환경부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는 원전이 가져다 줄 실리도,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 중립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탈원전 명분도 잃게 됐다. 유럽에 이어 미국도 CES(청정 에너지 기준)에 원전이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 흐름에 발맞추라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해를 넘기면서까지 숙의를 거친 EU택소노미가 튼튼한 골조 위에 쌓아올린 성이라면, K택소노미는 앞으로 찾아올 외풍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상누각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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