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서] 재난의 시대, 희망을 거절한다

이명희 사회에디터 2022. 1.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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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종 감염병에 떠밀려 꼬박 2년을 살아냈다. 우리는 지금 확진자 수만 줄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감염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이명희 사회에디터

집 밖 출입을 자제하고, 서로 만나지 않으니 늘어난 건 시간뿐이다. 누군가는 반려식물을 들이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원치 않는 술자리에 가지 않으니, 영화·드라마 덕후들은 극장에 가지 않고도 본방을 기다리지 않고도 집에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실컷 봐서 좋았다. 처음엔 ‘나를 위한 그 시간’이 부풀어 오른 열기구처럼 설레고 좋았을 게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지겨워진다. 남는 시간에 미뤄뒀던 일들을 해보리라 맘먹었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무기력한 일상에 지쳐 권태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집(집에만 머무르는)태기’ ‘회(회사)태기’ ‘공(공부)태기’ 등 지루함을 느끼는 대상에 ‘권태기’를 합쳐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직장인들의 동료 의식은 옅어진다. 코로나 사태로 이직과 퇴사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21년 상반기 퇴사율은 오히려 전년보다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그 가설을 뒷받침한다. 취업준비생이나 입시생들도 마찬가지. 경쟁자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온전한 ‘내 시간’이란 타인과의 관계에 기대어 생겨나는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버티는 ‘슬기로운 기술’은 소진

돌아보면 우리가 버틴 2년은 참담하다. 방역의 문을 열고 잠그기를 반복하느라 모두가 지쳐 백기를 들고 싶을 때가 여러 번이었지만, 매번 “앞으로 2주가 고비”라는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백신 다 맞으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더 강한 변이가 생겨났다. 끝이 안 보인다. 버티는 데도 기술이 필요한데 이미 ‘슬기로운 기술’을 다 써버린 느낌이랄까. 그렇게 새해를 맞았다. 좋은 소식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바이러스와 분투 중이다.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에 일상회복은 또다시 미뤄졌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긴 기다림 끝에 잠시 맛본 ‘위드 코로나’는 희망고문에 가깝다.

이쯤 되면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어려운 희망’은 내려놓고 막막한 현재를 직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희망의 역설이다.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 거듭 실망하기보다는 잘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최근 영국 정부 자문단은 ‘코로나 사태가 예측 가능한 풍토병 상태로 정착하기까지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더 끔찍한 사실은 재난 뒤의 세상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로 버티며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한다 해도 해피엔딩이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새해에는 오래달리기를 하는 각오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모두가 이전의 세계로 최대한 빨리 되돌아갈 궁리만 한 것은 아닌지. 하긴 나만 해도 지금 이 상황이 ‘진짜’가 아니길 바라며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산 듯하다. 위드 코로나에 설레면서 ‘조금만 견디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본다.

절망이, 고통이 크다고 해서 희망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분간 계속될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희망을 거절’(정호승의 시)하고, 2인3각 경기 선수처럼 함께 뛰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 그만큼 성숙해졌다. 바이러스를 단시간에 잠재울 수 없는 현실에 맞게 장기전으로 태세를 전환해야 한다. 마침 정부가 방역체계 개편에 착수한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히고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젠 오래달리기…함께 뛰어야

지난해 말 감염병의 위세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와중에 읽은, 인류 문명의 멸망을 다룬 SF소설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으스스하다. 책에 실린 단편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의 주인공 정윤은 양궁 메달리스트다. 그는 지방의, 계단에 두꺼운 철문이 두 개나 있는 옥탑방에 산 덕에 좀비 떼를 피해 남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경제적 궁핍이 정윤을 살린 것이다. 고립된 정윤이 마지막 남은 참치캔을 비우고, 철사 옷걸이로 만든 화살을 자신에게 겨눌 때였다.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들리는 ‘두두두두’ 소리. 지칠 수밖에 없지만 지치면 안 되기에. 그래서, 어리석게도 구조 헬리콥터를 기다린다. 이번에도 헬기가 구해주지 않고 통조림만 주고 가버린다고 해도.

이명희 사회에디터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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