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분소의
[경향신문]
영하권 날씨. 파드득나물을 먹은 것처럼 개가 추워하길래 장롱에서 헌 옷을 골랐다. 애갱이들에게 주었더니 물어뜯으며 논다. 이래저래 그러모은 옷들이 제법 많더라. 패딩이나 목도리는 생일선물로 이맘때 받은 게 십년을 애정하며 걸친다. 개들이 노리지만 주지 않았지.
동절기엔 송아지에게 옷을 해 입히는데, 고걸 장난삼아 빼앗아 입어본 적도 있다. 내겐 다운증후군 형이 있었는데, 사람보다 동네 송아지들을 더 좋아했어. 형 덕분에 송아지랑도 친하게 지냈었지. 방한복을 뺏었다가 어미 소에게 들키면 뿔에 받혀 대포처럼 날아가는 수가 있다.
예전엔 엄마들이 바느질을 기가 막히게 잘했어. 우리 어머니도 천을 떠와서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시곤 했지. 또 뜨개질로 장갑이나 모자를 떠주셨는데, 가죽장갑을 낀 녀석이라도 하나 부럽지 않았다.
신년 연휴마다 인사차 오는 대전 사는 동생 스님. 명색 주지 스님이 절을 버리고 놀러왔을 때는 자동 좋은 곳엘 가야 할 텐데, 변두리 풀 뜯는 목사랑 음악이나 골라 듣다 시시한 한담으로 정초를 보낸다.
다음날 산엘 갔는데 등산객들이 이른바 아웃 도어와 장비들을 총동원한 산행. 우린 그저 운동화에 평상복 차림. 귤 2개, 바나나 2개, 생수 2개. 정상 바위에 앉아 ‘분소의’ 얘기하며 주전부리. 분소의(糞掃衣)란 똥 닦는 헝겊을 조각조각 기워 만들었다는, 스님들의 옷. 떠돌뱅이 ‘운수납자’라고 할 때 납자도 ‘납의’를 입은 자를 가리킨다. 평생토록 옷 한 벌로 지내는 스님이 요새야 없겠지만 과거엔 있었다. 기독교 집안에도 그런 수도사들이 있었다지. 공동묘지 시신이 입던 옷을 걸쳐 입고, 많이 해진 건 이불 삼아 덮고 자면서 거지 수행. 최근 누가 신상 운동화를 한 짝 보내왔는데 스님도 내 발이랑 비슷하여 선물로 안겨주고 보냈다. 작년에도 본 신발이 해지고 닳았더라. 많이 가질 때 충만한 게 아니라 나눌 때 충만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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