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0] 최초의 창작 동요 '설날'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2. 1.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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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는 무엇일까? 종종 인터넷에서 윤극영의 ‘반달’을 첫 창작 동요로 거론한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약 10년 전에 자료를 찾아내 논문을 통해 아니라고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창작 동요’란 근대 이후에 작사자와 작곡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창작한 동요를 뜻한다. 지면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창작 동요는 윤극영이 작곡한 ‘설날’(윤극영 작사)과 ‘고드름’(류지영 작사)이다. 두 노래 모두 잡지 ‘어린이’ 1924년 2월 호에 수록되었다. ‘어린이’ 1924년 11월 호에 실린 ‘반달’(윤극영 작사·작곡)보다 ‘설날’과 ‘고드름’이 9개월 앞선다.

두 노래에 앞서 ‘어린이’ 1923년 9월 호에 정순철의 ‘형제별’과 김용희의 ‘나븨(나비)’가 실리긴 했으나 번안곡으로 추정되기에 창작 동요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작사자와 작곡자가 적힌 본격 창작 동요는 아직까지 ‘고드름’과 ‘설날’이다. ‘고드름’은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고, ‘설날’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시작하는 그 노래다. 두 노래 모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집으로 1926년에 발간된 윤극영의 ‘반달’에도 실려 있다.

윤극영은 ‘설날’을 만들게 된 동기를 밝힌 바 있다. 매년 1월 1일에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1년의 학업을 시작하는 의식을 일본 노래인 ‘식가(式歌)’로 마무리하는 데에 신경질이 날 정도로 윤극영은 예민해졌다.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려고 고심하다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 즉 설날에 빚어지는 일들에 중점을 두자 술술 풀렸다고 한다. 알다시피 섣달그믐을 ‘까치설’이라고 한다. 예부터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설날 새벽에 가장 먼저 듣는 소리로 그해 운수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풍속이 나온다. 이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운수 대통으로 여겼다.

총 4절로 이루어진 ‘설날’은 전통 놀이와 풍습을 들어서 가사를 만들었다. 노랑 저고리, 색동저고리, 절 받기, 널뛰기, 윷놀이 같은 시어는 분명 우리 민족의 설과 관련된 말이다. 음악적으로 4분의 4박자에 16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설날’은 다장조의 7음 음계를 사용했다. 2022년이 밝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창작 동요인 ‘설날’을 돌아보며 동심(童心)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할 것은 동안(童顔)이 아니라 동심이라 했던가! 순수한 마음을 지키자 다짐하는 새해 첫날, 나는 동요 ‘설날’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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