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요된 간병 살인, 처벌 대상은 국가다

윤영호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서울대 의대 교수 2022. 1.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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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상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된 22세 강도영(가명)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4년 원심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방치해 죽게 했다는 죄목이다.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한 사건에 대해서만 양형 부당을 사유로 한 상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각계의 탄원에도 이미 고등법원에서 지난 11월 항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부모 자식만이 아니라 부부·형제 사이의 간병 살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만간 초고령화 사회가 닥치면 간병 살인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병으로 인해 스스로 돌보기 불가능한 환자와 그 간병을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의 인간적 삶의 기본권 보장을 어떤 정책보다 우선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도 촘촘하면서도 앞서 나가는 돌봄 지원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국가’라는 근본적 사고 전환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간병 비극은 감내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견뎌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 중 누군가 죽어야만 끝난다고 한다. 경제력이 없는 20대에게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경제적 이유로 퇴원시킬 수밖에 없게 하고, 도시가스가 끊기고 폐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하며, 인터넷마저 끊기게 하여 사회적인 단절까지 시켰다면 국가가 젊은 청년을 간병 살인으로 내몰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택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은 채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방어할 방법이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이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 강요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형법 제12조(강요된 행위)에 따르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씨의 간병 살인은 ‘강요된 행위’로 해석해 책임 조각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이 단절되어 돌봄 주체가 무너져 생긴 간병 살인은 반인류적 국가나 불법 집단이 고문과 폭력으로 강요한 살인과 다르지 않다. 인간적 삶의 권리를 박탈한 인권유린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정치적 탄압이다.

국가는 헌법 제34조 “신체 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에 따른 합당한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했다. 수사기관은 ‘강요에 의한 간병 살인’이라는 정황 증거를 확보해 이를 강요한 국가를 구속해야 했고, 법원은 강씨가 아니라 가족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고 존재 이유를 망각한 국가에 징역을 선고해야 했다. 간병 살인으로 내몰아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인간 존엄 침해와 불평등의 극치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은 우리 잘못 또한 무척 크다.

국무총리가 제도 보완을 언급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가시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간병 살인의 기본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근본적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은 간병 살인으로 형 선고를 받은 대상자를 심사해 특별사면을 해 줄 필요가 있다. 간병 살인의 징역 선고가 늘 때마다 국가가 징역을 사는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간병 살인의 비극적 강요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희망의 출구를 만들어 주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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