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한·미동맹의 이면

박병진 2022. 1. 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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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계에 중국 포함시켜야" 주장
미국의 전략적 이익만 좇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도 충돌
한·미 간 갈등관리 중요한 시점

사람들이 묻는다. “지금 한·미동맹은 온전하냐”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냐”라고 에둘러 답한다. 동맹은 변한다. 동맹은 단순한 친분 관계와는 다르다. 부침(浮沈)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일쑤다. 그래서 ‘적과의 동침’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피로 맺은 한·미동맹도 칠순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 세상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찰떡궁합처럼 잘도 지냈다. 더러 불편함을 느끼기는 했으나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상호 배려와 고도의 정치적 수위조절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최근 한·미동맹의 불편한 기류가 미국에서 표출됐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25일 미국의소리(VOA)방송에 출연해 “한반도 유사시 적용할 새로운 작전계획(작계)에 중국에 대한 대응 방안도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작계 수립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례적인 일인 데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작계에다 중국을 집어넣자고 떠벌리다니 기가 막힌다. 아무리 군사적으로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미국이 다급해졌다 치더라도 이건 아니다. 안보는 한 나라의 주권사항이지 않나. 현직도 아닌 전직 주한미군사령관이 함부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모양새가 영 보기 그렇다. 머릿속에 ‘오만하다’는 단어가 계속 맴돈다.
박병진 논설위원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그의 한국 재임시절을 되짚어본다면 유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2018년 11월 한국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갈등을 조장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국방부 영내 이전을 무산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한·미연합사의 국방부 영내 이전을 두고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전임인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과 합의한 것은 물론 양해각서(MOU)까지 맺었다. 국회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그해 11월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는 양국 국방장관이 재확인했다. 이전 예정 건물도 정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2019년 1월 이전 예정지를 둘러본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돌연 이전 결정을 번복하고는 평택으로 옮기겠다고 우리 측에 통보했다. 발등이 찍힌 정부는 망연자실했다. 그런데도 입도 벙긋 못했다.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과 한·미동맹 균열을 우려해서다. 시나브로 한·미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에이브럼스의 행동은 미국 우선주의에 기인한다. 동맹인 한국의 입장은 외면한 채 미국의 전략적 이익만을 좇은 것이라고밖에는 보이질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 정점을 찍었다. 2020년 1월 말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타결이 늦어지면 그해 4월 1일부로 잠정 무급휴직을 시행할 수 있다고 한국인 근로자(군무원)에게 통보했다.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위해 주한미군 군무원들을 볼모로 잡고 무급휴직을 결정한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작용했다. 그렇다고 이 일을 두고 그가 유감이나 사과 입장을 낸 적은 없다. 에이브럼스는 아파치 헬기 훈련장 문제를 두고도 불만이 가득했다.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충돌하며 한·미 연합훈련이 축소된 상황도 걸고 넘어졌다. 2019년 12월 중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의 비무장지대(DMZ) 출입을 두고 딴지를 건 것은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다. 한국과의 동맹 가치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의 중요성에 대해 오해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인도·호주와의 비공식협력체 ‘쿼드’(Quad)를 강화하고, 영국·호주와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를 결성한 데서 보듯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동참 요청에 선을 긋고는 있다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의문이다. 에이브럼스의 인터뷰에 이어 열흘 뒤인 지난 4일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대사까지 나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정권교체기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한·미 간 갈등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동맹이 출렁일지 반전할지는 오로지 우리 몫이다.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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